표지이야기

박정희는 늘 쫓겼다

(사진/71년 대통령선거에서 40대 기수 김대중이 보인 위력은 박정희를 불안하게 했다.)

김대중과 박정희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해 보인다. 김대중은 철 저한 피해자였고, 박정희는 철저한 가해자였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않 았던 것 같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약점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박정희는 언 제나 쫓기고 있었다.

김대중이 박정희와 처음 맞닥뜨린 것은 1967년 목포에서 치러진 제7대 국 회의원 선거였다. 김대중은 이때 세번째로 국회의원에 도전하고 있었다. 상대는 육군 소장 출신의 전 체신부 장관 김병삼이었다. 박정희는 노골적 으로 김대중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두 차례나 목포를 방문하고 목포에서 국무회의까지 열었다. 심지어 측근들에게 “다른 사람 은 몰라도 김대중은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고 공언했다고도 한다.

박정희는 왜 그랬을까? 당시 박정희는 이미 3선 개헌을 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정적들을 꼽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제1순위는 물론 신민당 대표 유진오였겠지만 한창 잘나가는 김대중과 김영삼도 고려의 대상이었 을 것이다. 게다가 김대중은 목포에 온 박정희에게 3선 개헌의 가능성을 묻기도 했다. 김대중은 지나는 말로 물었을 수도 있지만 박정희는 얼마나 뜨끔했을까?

아마도 이런 김대중의 날카로움이 박정희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으로 보인 다. 71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당의 40대 기수로 등장한 김대중 후보는 “이번에 다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면 아예 총통제를 도 입해 영구 집권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또 한번 간파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이렇게 대꾸했다. “이번에 국민들이 나를 찍어 주면 다시는 내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기자 1 년 만에 유신을 단행해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선에서 박정희는 94만7천표 차이로 이겼다. 김대중의 선전에 비하면 적 지않은 표차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선거에서 부정이 없었다면 박 정희가 이긴 표차 이상으로 졌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김대중의 위력 이 박정희를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10월 유신이 선거후 1년 만인 72년에 이뤄진 것도 이런 불안감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 뒤 박정희는 정말로 김대중에게 가혹하게 했다. 트럭으로 테러를 해 죽이려 했는가 하면 일본에서 유신반대 운동을 벌이던 그를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동원해 납치해다가 고기밥을 만들려고도 했다. 이 일로 박정희 는 대일관계와 남북관계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김대중을 집에 연금을 시켰다가 다시 감옥으로 보냈다. 김대중이 박정희의 속을 너 무도 잘 읽고 있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78년 12월27일 김대중을 특별사면한 것은 박정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베푼 선행이었다.

박정희의 이런 태도를 폭로한 것은 바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김형욱은 77년 미국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박정희의 각종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자리에서 “박정희의 최대 정적은 김대중과 김영삼이며 73년 김 대중 납치 사건은 박정희의 심복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꾸민 일 이었다”고 밝혔다. 결국 김형욱은 유럽에서 실종됐다.

두 사람은 생전에 단 한번의 공식적인 대화도 하지 않았다. 김대중은 79 년 10월26일 박정희가 죽은 뒤 한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 전에 한번 만나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김대중만 유감인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나 서 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한국 현대사가 그렇게 흘러가 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김규원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