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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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온이 되는 물병이었다.
아침 6시30분에 어수선하게 출근준비를 마친 진정헌(27·LG전자 대외협력 팀)씨에게 어머니는 보통 크기의 보온병을 건넸다.
급한 출근길이기에 통근버스로 향하는 차안에서 열어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잣죽이었어요. 보온병에 담고도 안심이 안됐는지 품안에 꼬~옥 품었다가 차를 타려고 할 때 건네주시더군요.”
입사 2년째로 접어드는 진씨는 언제부턴가 그렇게 아침마다 어머니가 건 네는 보온병 속의 잣죽을 아침으로 먹고 있다. 무뚝뚝한 성격이어서인지 며칠전 어머니의 품에 안긴 보온병을 보곤 눈물을 흘릴 뻔했는데도 아직 까지 고맙다는 말한마디 하지 못했다.
의정부에 사는 그가 여의도 사무실까지 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3 0분 가량. 지하철 갈아타기를 반복하며 출근하고 나면 벌써 녹초가 되버 렸다. 어렵게 통근버스가 다닌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렇지만 출발시간이 너무 일렀다. 잠자고 나가기도 바쁜 그가 아침을 먹는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잣을 갈아 죽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주시더라구요. ‘따뜻한 아침’을 못 먹는게 그렇게 안타까우셨나봐요.”
날씨가 추워지자 어머니는 보온병에 담고도 안심이 안되는지 꼭 품안에서 보온병을 꺼내준다.
늦둥이에다 외동아들인 탓에 그의 부모는 나이가 퍽이나 많다. 35세 늦은 나이에 그를 세상에 낸 그의 어머니는 벌써 60대 중반으로 젊어들었고 10 살 터울 그의 아버지는 70대를 훌쩍 넘겼다.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이 아침마다 부모님을 귀찮게(?) 하는게 쉽게 이해 되지만은 않았다. “외동아들에다 늦둥이어서 부모님이 너무 위해주는 게 부끄러웠지요.” 마마보이라는 말을 들을까봐 스스로 먼저 거부하고 나섰 다.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느끼면서도 마음을 쉽게 받지 못했다고 한다 . 대학시절까지도 그랬다. 요즘은 그랬던 자신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게 철이 들어가는 징표일까.
“부모님께 무얼 많이 해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하고 싶어하는 일, 기 쁘게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뚝뚝한 성격의 그는 아침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보온 병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선다. 그에게로 흐르는 늙은 부모의 ‘큰 정성’ 이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송현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