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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식/비운의 이상주의자

“진흙탕 현실에 발목 잡힌 비운의 이상주의자”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분명 비판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는 눈앞의 문제 를 해결하는 데 온몸을 던지지 않았다. 경제정책·금융·예산·세제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경제부총리로서 올 들어 기아 등 각종 사태로 인해 경제가 좌초할 때 자신이 가진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 다 안 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 모른다. 관치금융이나 정부규제를 체질 적으로 싫어하면서 시장경제론을 주장했던 그로선 자신의 기존노선을 지 키기 위해서나 비교적 때묻지 않은 이미지를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 실로 내려오지 않고 성층권에 앉아 있는 게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도 업적을 남기려는 욕심이 조금은 있어서 금융개혁을 앞당겼고 21세기 장기구상 마련에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금융권과 산업계의 혼란이 방치 됐고 그 자신 삼성 유착설이라는 운명적 올가미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바람에 경제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경제난 5적’의 대표적 인물로 그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강 전 부총리가 한 일이 모두 비난받을 만한 것들은 아니라는 의 견도 적지 않다. 경제구조의 전환기에 그가 한국 경제계에 남긴 메시지는 결과에 관계없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권 력을 놓지 않기 위해 집단 이기주의로 뭉치고, 금융기관들은 고위층 청탁 을 핑계로 부실대출을 한 뒤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돌리는가 하면, 기업 은 방만한 경영으로 역시 부실해진 뒤 정부나 금융기관이 도와줘야 한다 고 생각하는 게 모두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기아사태에서도 경영 진이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을 도울 수 없다고 버텼고 금융기관에 도 부실기업의 장래는 정부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떼밀었던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론의 출발이다. 이러한 방침이 경기침체라는 늪 을 만나 망신을 당했지만 현 난국에서 과연 나는 어떤 책임이 있고 나 스 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은행·기업·국민 모두가 되새기게 하는 데 에는 공헌한 게 확실하다.

박대호/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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