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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차라리 대통령감?

단풍의 계절인 올 가을에는 축구장도 온통 붉은색이었다. 그리고 차범근( 44)도 ‘스타선수’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감독’으로 다시 탄생한 계절이었다.

월드컵 축구에 대한 관심은 올림픽보다 크고 거기다 우리는 2002년 월드 컵 주최국이다. 이렇듯 더욱 눈귀가 쏠렸던 98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이 4연승을 내달리는 등 기대 이상의 기량으로 본선진출에 파란불을 켜주니 열기는 더욱 고조됐고 특히 일본 원정경기에서 짜릿한 뒤집기쇼를 보여줄 때 그 열기는 극에 달했다.

결국 한국이 6승1무1패로 아시아 B조 1위로 월드컵 본선을 확정지을 때 이미 한국은 붉은악마 증후군과 차범근 증후군으로 즐거운 열병을 앓고 있었다. 차범근은 애초 역대 최고의 축구스타였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돌아와 89년 프로축구 현대팀을 맡아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명성은 죽 지 않아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어린아이들마저 그를 알고 있었다. 결국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삼아 ‘명선수 출신 명장은 없다’는 통설을 깼 으니 차범근에 대한 열광이 선수시절 이상으로 뜨거운 것은 당연했다.

결국 그는 올해 초 대표팀 감독을 맡아 월드컵 4회연속 진출 및 5회 연속 진출의 가교를 세웠다. 차 감독은 말은 화려하지 않지만 눈빛과 행동은 늘 믿음직했다. 대표팀 감독을 맡기 전에는 꾸준히 어린이를 위한 축구교 실을 열었고 감독을 맡자마자 대표선수들의 숙소를 호텔에서 태릉선수촌 으로 바꾸는 겸손을 실천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감보다는 자료를 철저 히 분석해 이를 토대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고 그리하여 이른바 과학축 구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정착시켰다.

차붐. 차범근이 독일 분데스리가에 건너간 지 1년이 지난 79년 독일의 일 간지 <빌트 차이퉁>은 그들 방식대로 차범근의 ‘근’이 성(姓)인 줄 알 고 차붐(BUM)이라고 불렀다 한다. 범의 독일식 표기 BUM은 발음상 영어의 붐(BOOM)으로 읽힐 수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이중적 의미의 표기였다. 착 각과 재기가 겹쳐 만들어진 ‘차붐’이 근 20년 만에 조국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송창석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