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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유럽좌파 희망은 있었다

지난 5월 영국총선에서 보수당의 18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혜성처럼 등장 한 토니 블레어(44) 영국총리는 97년 세계정치의 총아라 할 만하다. 한국 정치에까지 세대교체와 정권교체의 바람을 일으킨 ‘블레어 신드롬’은 2 1세기를 향한 유럽정치에 새바람을 몰고왔다. 특히 그의 승리는 한달 뒤 프랑스 좌파의 집권으로 이어졌고 내년 독일 총선에서 사회당의 승리 가 능성이 점쳐지는 등 유럽정치에 가히 좌파도미노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블레어는 탈냉전 이후 색채가 희미해진 사 회주의의 흐름을 대변한다. 그의 실용주의적 중도노선은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더욱 모호해질 21세기 유럽좌파의 좌표로 보여진다. 블레어의 승리에는 보수당의 장기집권이 빚어낸 부패와 무능에 대한 국민 들의 염증이 한몫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블레어의 젊고 신선한 이미지 에서 비롯된 개인적 카리스마, 그리고 보수주의 대명사인 대처리즘까지도 과감하게 차용한 ‘새 노동당’의 혁명적 정책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취임 이후 블레어가 보여준 ‘신세대 정치와 신세대 지도력’은 자신과 닮음꼴로 불리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에 빗대 ‘영국의 클린턴’이라고 할 만하다. 한때 90%를 웃도는 초유의 지지율을 확보한 블레어는 세계 어 느 지도자보다도 탄탄한 국내정치적 기반을 쌓고 있다. 다만 ‘깨끗한 정 치’를 표방해 온 그가 담배업계에서 제공한 불법정치자금 추문에 휘말리 고 있다는 점은 ‘옥에 티’다.

그러나 공약대로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유럽정치에 대한 영국의 발언권을 되찾아가고 있는 블레어에 대해 영국민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그는 한걸 음 더 나아가 최근 독립을 주장하는 북아일랜드 정치지도자와 76년 만에 대화해의 회담을 개최하는 등 평화의 희망을 던져주었다. 영국민들은 블 레어를 통해 21세기를 보고 있다.

류재훈 기자/ 한겨레 국제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