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추적

중앙일보는 이회창 선거캠프?

일부 언론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한다는 의혹 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내 중앙일간지가 특정후보의 선거전략 수립에 개 입한 것으로 보이는 보고서가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신한국당 경선이 끝난 뒤인 지난 7월24일 <중앙일보> 편집국 정치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확인된 문제의 보고서에는 이회창 후보가 신한국당 경선과 정에서 보인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앞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 바람직한 이 미지 형성방안 등이 A4 용지 4쪽 분량으로 자세하게 정리돼 있다.


동네아저씨 같은 인상 심으라

보고서는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제목 아래 먼 저 이 후보의 전략이 △세몰이 △탈당위협 △반대자들에 대한 공포분위기 조성 등 김영삼 대통령이 92년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썼던 방식이었다고 분석한다.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관련해 보고서는 △마구잡이 영입에 따라 92년 대선 때 ‘물먹은’ 사람들이 이 후보쪽에 섰다는 식의 이미지 훼손 △김윤환 고문의 지원에 따른 보수·수구 이미지 형성 △YS 대선자금에 대한 오락 가락하는 태도로 ‘법대로’ 이미지 탈색 △아들 병역문제 및 변호사 수 임료 과다 청구 등에 대한 정면 반박 부족 등 15가지를 자세하게 지적하 고 있다. 포용전략의 부재로 정치보복 가능성을 심어준 것이나, 발언 번 복에 따라 신뢰도 실추, 관료 출신 위주로 짜인 참모진영에 현장감이 없 었던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여기까지는 언론사의 입장에서 각 후보자 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는 정세분석 작업의 하나라고 봐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개선방향'은 단순한 정세분석 차원을 넘어서는 것임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이 후보의 이런 약점에 개선책으로 ‘대쪽’ 이미지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포용력을 높이면서 덕치(德治)대통령의 인상을 주어야 한 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연쇄부도가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면서 “당 대표 재직시 팔 걷어붙이고 경제회생을 주도하는 모습 을 과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기까지 하다.

특히 보고서는 이 후보의 정치판 형성 방안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제안을 하고 있다. 김윤환 고문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을 촉구하고, 이한동 고문 등 민정계 주류를 인정하고 경선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은 최병렬을 적극 활용하라는 조언은 눈에 띄는 대목이 다. 이 보고서의 ‘주문’에 따른 것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이 후보는 후 임 당 대표 선정때 일등공신인 김윤환 고문의 반발에도 이한동 고문을 대 표로 발탁했으며, 최병렬 의원도 선대위원장으로 중용했다. 또 당내 단합 뿐 아니라 민주당·통추 인사 영입 등 그림을 크게 그리라는 보고서의 지 적은, 민주당과의 전격적인 통합을 이뤄 한나라당을 출범시킨 지금의 현 실에 비춰 흥미롭다.

이런 전반적인 대선전략과 함께 보고서는 이 후보가 대인관계에서 보이는 성격상의 단점 등 스타일상의 문제점과 개선방향도 지적하고 있다. “말 수가 적어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 사석에서 과격한 용어 사용을 삼가라,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어설픈 유머는 피하라, 묻는 말 하고자 했던 말 이외에는 하지 마라” 따위의 주문은 마치 이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보 고서를 작성한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아울러 텔레비전 토론에서 진지한 설득조의 모습을 보인다면 DJ와 차별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헤어스타일을 부드럽게 바꾸고 마음씨 좋 은 동네아저씨와 같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제안도 눈길을 끈다.


10여차례 작성 이회창 캠프에도 전달

언론계 한 관계자는 이 보고서가 이 후보 선거캠프에서 대외협력특보를 맡고 있는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고흥길씨에게도 전해졌다고 밝혔 다. 또 이 관계자는 신한국당 경선 이후 10여차례에 걸쳐 <중앙일보> 정 치부에서 이 후보에게 도움말을 주기 위한 목적의 이러한 보고서가 작성 됐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그동안 <중앙일보>가 여러 차례 이 회창 편들기 의혹을 샀던 것에 비춰 정치권과 언론계 전반에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보고서에 대해 <중앙일보> 이수근 부국장 겸 정치부장은 “특정후 보를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며 언론사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정보보고 의 하나 일뿐”이라며, “경선 직후 이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하는 경선 평가를 들은 이아무개 차장이 정리해 보고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겨레21

조준상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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