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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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월의 크리스마스')
김의수/영화평론가
멜로드라마의 르네상스인가? 초가을 <접속>의 바통을 이어받아 늦가을에 온 <편지>가 눈물의 객석을 만들고 있다. 지난 11월26일 오후 서울 신촌 의 한 극장. <올가미> 매표소는 올가매져 있었고, <편지>의 객석은 빈틈 을 찾아 보기가 힘들었다. 그때만 해도 여름엔 호러, 가을엔 멜로라고 자 평했다. 그러나 다음날 종로에 있는 극장을 찾은 필자는 수십미터로 이어 진 <편지>의 줄을 보고 깨달았다. 멜로드라마의 질긴 생명력을.
사실 멜로드라마는 충무로에서 효자 상품으로 통한다. 다른 장르에 비해, 적은 돈으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멜로드라마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미워도 다시 한번>같이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는 작위적 구성, 비극적 운명주의에 집착했다. 여성 억압적 사회현실,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여성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던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초 젊은 여성은 더이상 의존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차고 , 성에 관해 대담해졌다. 이때 나온 영화가 <결혼이야기>. 멜로드라마가 사회변화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변한 것이다. 그뒤 멜로드라마는 코미디 장르와 만나, 실컷 웃기고 가끔 눈물을 흘리게 하는 구도로 정착한다. 깊 은 슬픔보다는, 인스턴트식 사랑얘기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올해 멜로드라마 물줄기는 방향을 바꿨다. <접속>은 신세대 통신 문화를 반영하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했다. 형식은 현대적이었지만, 기본 흐름은 옛날로 돌아간 것이다. <편지> 역시 지고지순한 사랑, 비극 적 운명으로 돌아왔다. 이정국 감독은 곳곳에 관객의 눈물샘을 터트릴 장 치를 준비했다. <편지>가 기존 신파극과 다른 점은 감정이 갑자기 폭발하 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점이다. 또 남녀 외적인 요소들(가령 유부 남이나, 고부간의 갈등)이 없고, 영상미와 세심한 소품들(화분, 자전거, 의자 등)이 좋았다.
멜로드라마는 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성공한다. <편지>는 찌든 도 시를 벗어나고픈 욕망, 일회성 사랑에 대한 염증을 해갈해준다. 무너져가 는 대기업, 실업, 국채보상운동이 나올 정도의 외환위기 등 암울한 현실 에 답답해 하는 관객들에게 실컷 울 기회를 제공한다. <편지>와 <접속>의 공통점은 대화에 있다. 편지는 고전적, 통신은 현대적인 방법으로 단절된 사회에서 교감하는 매력을 준다.
그러나 멜로드라마엔 함정이 있다. <편지>의 경우,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 키고 있으나, 먼나라 얘기를 그리고 있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관객들 은 울겠지만 결국 돌아오는 곳은 차가운 현실이다. <접속>을 믿고 들어간 통신망에선 음담패설이 난무한다.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장르에 아까운 신인들의 역량이 사그라지는 점도 아쉽다. 독립영화의 거장이었던 장윤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했을 때 멜로물을 만들리라곤, 적어도 난 상상하지 못했다. 이정국 감독 역시 <부 활의 노래>의 흥행실패를 의식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했다. 물론 신 인감독들의 작가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닐 것이다. 영화를 상품으로 치부하 는 제작자와 한국영화의 실험성에 등을 돌리는 관객의 합작품인 것이다. 어쨌든 12월에 <8월의 크리스마스>, <인연>의 개봉이 예정되어 눈물 잔치 는 계속될 것 같다. 한바탕 목놓아 울고 주저앉을 것인가? 다시 일어설 것인가? 멜로드라마를 변화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왜냐하 면 멜로드라마는 사회 현실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