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링턴'/동성의 지순한 사랑이야기

크리스토퍼 햄튼 감독
에마 톰슨, 조너선 프라이스 주연

남자 짝이건, 여자 짝이건, 동성애에 대한 얘기는 최근 우리 사회가 별 소득없이 떠들어온 수다거리. 현실성이 없으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 또는 대학사회를 중심으로 지식인 판에서 넘쳐나기 시작한 ‘게이’니 ‘레즈비언’에 대한 대화는 영화판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온 주제 가운 데 하나다.

<캐링턴>은 동성애에 대한 복잡한 조합을 보여주되, 주제는 ‘사랑’ 하 나인, 말하자면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다. 이 사회가 호기심을 넘어 갑작 스럽게 수용하기 시작한 동성애에 대한 여러 삽화들이 모여 하나의 큰 사 랑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캐링턴>은 화가였던 여자주인공의 이름. 20세기 초 영국의 지식인과 예 술가 서클인 ‘블룸즈버리 그룹’의 실존 인물들을 다룬 일종의 전기 영 화다. 원작의 주인공은 리튼 스트리치(조너선 프라이스)지만, 영화의 극 적인 구성을 위해 도라 캐링턴(에마 톰슨)이 앞에 나섰다.

리튼 스트리치(1880∼1932)는 <빅토리아 시대의 명사들>이란 전기물로 유 명한 영국의 작가였다.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 깐깐하고 선병질적 성격의 그는 요즘 말로 하면 만천하에 ‘커밍 아웃’한 동성애자였다. 그 가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도라 캐링턴(1893∼1932)의 소년다움과 독립적인 생활방식, 그리고 둘을 연결하는 독특한 감수성 때문이었다. 첫 눈에 서로를 알아 본 두 사람은 평생을 한집에 살았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사랑을 넘어선 존경과 관용과 동지애로서의 정신적인 사랑이었다.

리튼은 리튼대로, 캐링턴은 캐링턴대로 그들이 고른 연인과 결혼하거나 이중 삼중의 연애를 즐겼지만 결국 그들은 늘 서로를 그리워했고, 그 사 랑의 회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리튼이 죽어가면서 캐링턴에게 마지막으 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나, 리튼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캐 링턴의 최후는 동성이건, 이성이건, 진실한 사랑에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