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진단

국가 기간산업이 흔들린다

정홍철/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지난 여름 대한항공기 괌 사고 조사 과정은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국항공진흥협회의 항공통계자료(1994)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항공 안전도는 조사대상 25개국가운데 사고 발생률 21위, 사고 사망자수 24위로 밝혀졌다. 미국의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BS)와 같은 항공기 안전사고를 전담하는 정부 차원의 상설 전문기구가 없는 우리 정부는 건교부 공무원으로 사고조사요원을 급조해 현지에 파견했다.

항공우주분야 세계 10권에 들어서는 길

항공기 사고조사의 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같은 사고를 예방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고 원인규명 능력이 부족 하다 보니 미국 정부의 조사활동에 부수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따 라서 앞으로 동일한 항공 사고 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사고조사 자료의 축 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몇해 전 일어난 아시아나항공기 추락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필자가 통계적으로 추적한 바에 따르면, 이런 원시적 상황 이 개선되지 않는 상태로 2004년이 되면 괌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매년 1 건꼴로 발생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항공산업은 크게 운송분야와 제작분야로 나뉜다. 항공기 제작산업은 고도 의 기술집약적 산업이고, 기술파급효과도 매우 큰 선도산업이다. 또 부가 가치가 높아 우리나라가 새롭게 개척해야 할 산업분야이다. 그러나 투입 되는 자본이 막대하고, 자본의 회임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국가적 차 원의 육성, 진흥 대책이 전제되어야만 발흥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우리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2015년까지 항공우주산업 분야에서 세계 1 0위권 내에 진입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최소한 중형항공기 독자개발의 경험을 통하여 제작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정책을 수립, 추진해야 한다. 문민 정부 출범 직후부터 중국과의 중형항공기 합작 사업을 추진하였지만, 천 문학적 투자비만 낭비하고 결국 무산됐다.


기업에 투자 맡길 수 없다

둘째는, 제작기술의 바탕이 되는 항공우주산업의 기술교육을 국가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선진국이든 후발국이든 항공산업과 교 육은 국가 차원에서 인재를 육성(예, 영국의 크랜필드대학, 러시아 항공 대학, 미국의 파크스대학 등)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항공운 항, 제작기술, 전자, 통신 및 재료 등 고도의 항공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한국항공대학교가 1979년 국립에서 사립화하면서 국가의 지원이나 육성책은 전혀 없는 현실이다. 모기업의 경기 부침에 흔들리지 않고 항공인력을 육성하는 데 투자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업은 현실 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국가차원에서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는 항공우주산업의 장래는 암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항공산업도 결국 사 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공산업의 출발은 전문인력의 체계적인 육성에 서 시작하는 것이 불문가지다. 더이상 늦어지기 전에 정부는 항공산업 전 반에 대해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 21세기 첨단산업인 항공산업을 준비 해야 할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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