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추적

중앙·조선의 “사랑해요 이회창”

‘이회창을 대통령으로!’ 이렇게 내놓고 주장하는 언론은 아직 우리나라 에 없다. 우리 언론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이른바 ‘언론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칼럼 통해 DJP연합 반대 밝혀

이들은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를 이회창 편들기에 나서고 있는 대표적 인 언론으로 꼽는다. 먼저 <중앙>의 경우 10월22일자에서 국민회의 김대 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유보 결정이 김 후보와 김영삼 대통령의 막후 협상에 따라 이뤄졌다는 추측성이 강한 보도를 내 보냈다. 24일에는 김 대통령이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밀었다 고 보도했다. 역시 확인이 안 된 추측성 기사였다는 지적이다.

선감련에 따르면 지난달 3일 합의된 DJP연합에 대해 <중앙>은 1일자에서 당시 신한국당 특별당보 내용을 빌려 “1백48세 권력욕” “세습흥정” 등 감정적인 비난 수준의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같은달 7일 이회창 후보와 조순 후보의 연대선언에 대해선 별다른 비판없이 ‘정책연 합’으로 보도했다. 조-이 연대가 DJP연합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명 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 창당에 맞춰 11월4일부터 사흘간 1면에 실은 ‘ 청와대, 국민신당 창당지원’ ‘국민신당 창당자금 의혹제기’ ‘신당에 현철커넥션 있다’ 등의 보도 역시 사실 여부가 불명확해 다른 신문이 조 심스럽게 보도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조선일보> 역시 10월11일과 18일 칼럼을 통해 DJP연합에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하더니, 10월25일자 칼럼에서는 이인제-통추-조순을 묶는 반DJP연 합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중립성을 내세우는 한 신문에서 DJP연합에 맞선 바람직한 합종연횡의 구체적인 모습까지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 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 정희종(37) 신문분과장은 “<조선>의 보수 노선 에 비춰 이는 사실상 ‘DJ는 무조건 안 된다’는 선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유형의 ‘이회창 편들기’는 그래도 눈에 잘 띄는 편이다. 이에 비 해 편들기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중립성을 내세우기가 쉬워 효과는 훨씬 높은 분야가 있다. 바로 여론조사 분야이다. 여기서도 <중앙>과 <조선>은 이회창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는 분석이다.

<조선>과 <중앙>은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앞설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조선>은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 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나온 11월8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 지 않았다. 이틀 뒤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5.9%포인트 오른 21.4%, 이 인제 후보가 2.2%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이를 ‘이회창 급상승, 이인제 주춤’이라는 제목으로 썼다. <중앙> 역시 이인제 후보가 15%포인 트 가량 앞선 10월 말 조사결과는 묵혀두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9.6 %포인트 올라 25.7%를 기록한 7∼8일 조사만 보도했다.


여론조사 내세워 중립성 가장

여론조사를 이용한 이런 ‘이회창 2위 만들기’는 방송 보도로 이어진다. 11월16일 9시 뉴스데스크는 그 압권이다. 이회창 후보 24.4%, 이인 제 후보 23.7%로 지지도 격차가 표본오차(±3.0%) 안에 드는 0.7%포인트 에 그치는데도 이회창 후보가 2위로 올라섰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이 다. 나아가 다음날에는 ‘김대중-이회창의 양자대결’이라고 보도까지 내 보냈다. 이는 10월∼11월초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보다 10%포인트 이 상 앞서던 때와 비교해 분명히 편파적이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이효성 교수(신문방송학)는 “‘내가 앞설 때는 왜 양자구도가 아니냐’는 이인제 후보의 항변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언 론이 이회창 후보를 위해 이중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 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서울방송>은 11월16일 아예 신한국당 내부 여론조사를 빌려 이회 창 후보가 2위로 올라섰다는 보도를 내보내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일부 신문과 방송의 여론조사를 대행하던 여론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의 사장이 한나라당 정세분석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었 다.

11월 이전만 해도 적어도 김대중, 이인제, 이회창 등 보수 정치권의 세 후보에 대해 언론은 나름의 균형보도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형식적인 공정성의 진전’이라는 섣부른(?)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들리기 시 작했다. 한국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가 틀리 기를 바랐는데 한치의 차이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 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67%가 언론이 이회창 후보에게 줄섰다고 답변했다. 사실 결과적으로 나타난 양적인 균형 보도는 본래 언론의 의도라고 할 수 없다. 야당인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여당 성향의 2위 후 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강제된 측면이 강하다. 언론의 ‘눈치보기’였다는 것이다. 그래야 11월18일 신한국당 김윤환 고 문이 경남지역 필승 결의대회에서 “우리가 남인가. 이번에도 영남이 뭉 쳐 이 나라를 살려내자”며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부추긴 것에 대해 일 부 언론이 침묵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최근 폭로된 ‘이-조 ‘clean(깨끗한)연대 이후 전략’이라는 신한국당의 내부보고서에는 <중앙>과 <조선>을 신한국당에 ‘특히 우호적’인 신문사 로 꼽고 100% 활용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다.

문제는 두 신문을 빼고 지금까지 눈치를 보고 있는 언론들도 12월 들어 본격적인 줄서기에 나설 우려가 높다는 데 있다. “그동안 침묵하던 말단 관료조직과 관변단체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한 언론인의 말 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지배블록의 시도가 점차 노골화될 것임을 예 고한다.


언론과 이회창 후보 뒤에는 5,6공이 있다

<조선>과 <중앙> 등이 DJP연합, 끝없는 보수화 행보 속에 이미 그들과 다 를 게 거의 없는 김대중 후보를 ‘무조건’ 거부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성균관대 이효성 교수의 지적은 시사적이다.

“지금 언론을 이끌고 있는 이들이 누굽니까. 대부분 5, 6공에서 커온 인 물들이에요. 이회창 후보 뒤에는 5, 6공 세력이 있어요. 일맥상통하는 거 지요. 언론은 견고한 지배블록을 이루고 있어요.”

이미 발가벗겨질 대로 벗겨진 ‘언론의 중립성과 공정성’이라는 허울을 우리나라 언론이 벗어던지지 않으려는 것도 바로 이와 맥이 닿아있어 보 인다. 국민의 이해에 반하는, 따라서 반드시 숨기고 싶은 지배블록의 이 해를 이들은 앞장서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준상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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