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박찬호 수지’ 엄청난 적자


(사진/적자 대 흑자. 박찬호는 1백만달러가 넘는 국제수지 적자를 보인 반면 선동열이 올린 흑자는 박찬호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다.)

최근 국제금융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등 외환사정이 악화되면서 대대적인 1달러 모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1월11일 도착해 30일까지 한국에 머문 박찬호(24·LA 다저스)도 나 라경제살리기에 한몫 거들기 위해 지난 24일 충남도청 방문 환영식 뒤 도 청 2층 접견실에 마련된 모금함에 부친 박제근씨와 함께 1달러씩을 집어 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 건너간 돈, 최소한 1백만달러

또 같은날 박찬호의 팬사인회가 열린 대전시 동양백화점 앞에서는 꿈많은 유치원생들이 ‘강속구로 어려운 경제를 지구 밖으로 날려버리세요’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스타 박찬호는 한국 경제의 난국 타개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고 어린 팬들은 박찬호가 야구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박찬호 본인도 의도하지 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실상은 눈에 보이는 캠페인과는 전혀 다르다. 팬들 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올들어 박찬호와 관련해 빚어진 국제수지 적자만 해도 최소한 1백만달러 에 이른다. 요즘 한창인 달러수집운동에 빗대면 박찬호의 활약상에 열광 한 대가로 1백만명이나 서랍백 속의 1달러를 찾아 바다 건너로 보낸 셈이 다.

박찬호는 올시즌 연봉으로 27만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박찬호의 선발등판 경기의 중계료만으로 한국으로부터 50만달러를 챙겨갔다. 이미 23만달러 적자다.

또 박찬호가 광고로 출연하는 외국기업인 나이키가 매출액의 15% 정도, 국내의 메이저리그 공인 야구용품 판매점인 F&F가 매출액의 25%, 제일제 당은 스포츠음료인 게토레이의 상표사용료로 매출액의 0.5%를 각각 미국 에 보내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각 회사의 ‘매출액 당 미국 송금 비율’에 각 회사의 ‘박찬호 광고효과 로 인한 매출액 증가분’을 곱한 뒤 3회사가 송금하는 금액을 합하면 모 두 73만달러. 벌써 96만달러가 마이너스다. 여기에다 여행사들이 만들었 던 박찬호 패키지를 합하면 족히 4만달러는 돼 1백만달러를 훌쩍 뛰어넘 는다.

이는 박찬호가 직접 받은 돈은 다 한국에서 쓰인다고 치고 미국이 박찬호 에게 준 돈은 모두 흑자로 처리했으며 또 동양제과 광고 등 한국 기업이 박찬호에게 준 돈은 제외한 수치다. 이 가운데 일부가 박찬호와 함께 바 다를 건넌다면 실제 ‘박찬호 수지’의 적자 규모는 이보다 많아질 수 밖 에 없다.

반면 선동열(34·주니치 드래곤스)은 정반대다. 주니치 드래곤스는 해태 구단에 선동열의 2년 임대료로 3억엔을 주었고 선동열에게 해마다 연봉 1 억5천엔을 주었다. 선동열은 게다가 올해 인센티브로 4천만엔을 챙겼다. 연평균 3억2천만엔, 달러로 환산하면 연간 2백51만8천4백달러 흑자였다. 박찬호 수지의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 액수다.

흔히들 지난해 한국을 빛낸 스포츠인으로 박찬호와 선동열을 꼽는다. 그 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두 스포츠 스타를 대접해주는 정도에서 상당한 차별을 두고 있다. 특히 외화획득에 한몫을 한 선동열보다는 적자 경영의 박찬호에 열광하고 있다.

선동열도 골든시리즈 한일야구와 고향 광주방문 등을 위해 지난달 30일 귀국해 9일간 머물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귀국하던 당일과 골든시리즈 기간인 11월2일까지 말고는 언론에 선동열 관련 기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방송에서는 아예 선동열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었다.


더 잘한 선동열, 왜 홀대받을까

<일간스포츠>를 살펴보면 선동열 관련기사로는 3일자 4면 머리를 장식한 것 말고는 4, 5, 6일에는 전무했고 7일에야 2면에 2단으로 선동열이 일본 훈련캠프에 합류한다는 기사가 자그맣게 실렸다. 한편 선동열의 매니저 최인호씨는 “그동안 광고 제의 한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당시 한국에 있지도 않은 박찬호는 일거수일투족이 체크되며 3 일 2면 머리, 4일 2면 머리, 5일 4면 머리, 그리고 7일에는 1·2면 머릿 기사를 장식했다. 또 삼보컴퓨터, 동양제과, 나이키, 게토레이 등 이미 4 개 광고에 CF모델로 출연하고 있으며 아직도 광고제의가 쇄도하고 있다. 11일 귀국해서는 방송사의 토크쇼 출연에다 박찬호 장학회 출범식, 야구 교실, 전국 순회 팬사인회 등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빠 결국 22일에는 팬 들과의 사진촬영과 인천 팬사인회를 취소하기도 했다. 결국 귀국 뒤 24일 까지 보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국내 프로야구 최고 연봉자인 LG 김용 수(1억2천2백만원)보다 많은 1억4천5백만원을 벌어들였다.

박찬호는 선발투수의 2대 잣대인 다승과 방어율에서 각각 14승과 3.38로 모두 내셔널리그 12위였다. 반면 선동열은 구원투수의 잣대인 세이브포인 트에서 39세이브포인트로 센트럴리그 2위였고 특히 구원승을 뺀 세이브는 사사키 가스히로(요코하마)와 함께 38세이브로 공동1위였다. 외화 획득면 에서는 물론 경기력면에서도 올시즌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에 남긴 족적 이 박찬호가 미국 프로야구에 남긴 흔적보다 분명 컸다.

그런데 왜 박찬호가 광고 등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환대받을까.

광고대행업자들은 “나이와 외모에서 우선 선동열에 비해 유리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선동열은 이미 스타여서 식상한 면이 있지만 박찬호는 원 래 무명이어서 신선하다. 메이저리그가 일본 프로야구보다는 아무래도 수 준이 높고 또 선동열과는 달리 박찬호의 선발등판 경기는 계속 중계된 것 도 작용했다.

결국 이러한 배경은 올해 초부터 스포츠기사 비중에서도 나타나 박찬호의 기사는 국내 프로야구 8개구단을 합쳐도 당해 낼 수 없는 일당백의 위력 을 발휘했고 광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선동열은 아직도 해태그룹 소속 이어서 해태그룹의 업종과 겹치는 기업의 광고모델로 쓰기에는 힘든 제도 적 측면도 일조했다.

실제로 동양제과는 썬칩광고로 ‘나고야의 썬’과 썬칩을 연결시키는 광 고카피로 선동열을 쓰려고도 생각했는데 우선 해태제과와의 관계가 걸렸 고, 소속사 선수이자 국내 프로농구 스타인 전희철도 고려했으나 아무래 도 비싸지만 언론의 머리를 내내 장식했던 메이저리거가 낫다는 판단에 결국 박찬호로 선회하기도 했다.

일부 광고 전문가들은 여기에다 자본주의 최강국 미국의 후광효과를 덧붙 였다. 즉 박찬호가 세계최고의 야구제전인 메이저리그에서 잘해서라기 보 다는 잘 사는 나라 미국에서 잘 나간다는 데 대한 선망이 깔려 있다는 지 적이다. 제일기획의 한 직원은 “찬호가 사람들의 마음 밑바탕에 깔려 있 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대리만족을 보여주고 있다. 메이저리거가 단순히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는 것을 넘는 현대판 왕자병 또는 공주병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누드모델 이승희와 미스유니버스 브룩 리가 각각 한차례 내한해 각종 광고와 방송출연으로 10억대의 수입 을 올릴 수 있는 사회분위기와 연결시켰다.


메이저리그 중계권료만 1백30만달러 요구

박찬호 수지는 98회계연도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 뻔하다. 언론에서 는 박찬호 연봉 1백만달러시대를 벌써부터 외치고 있다. 그러나 중계권료 만도 1백만달러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갈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는 내 년 시즌부터는 국내 프로야구 중계권료 산정기준에 준하겠다며 1백30만달 러를 요구하고 있다.

외환 수지만이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차세대 주자인 고교 유망주들은 물론 특급 소방수 이상훈(LG)마저 메이저리그행을 바라는 등 한국 프로야 구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부작용도 낳았다. 박찬호와 선동열 모두 의도 하지는 않았지만 주위에서의 열광 정도에 따라 누구는 외화를 낭비하고 누구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나라의 위세를 선양했다고 지나치게 자위하는 순간 나랏돈이 축날 수도 있는 것이다.

팬들의 입장에서 보아도 자신의 지나친 열광이 뜻한 바와 전혀 다른 결과 를 낳았을 수 있다. 과유불급(지나치면 차라리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은 이를 두고하는 말일까.

송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