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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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병통치약으로 각광받던 TV토론회 환상이 깨지고 있다. 잦은 토론회가 후보의 순간적 재치와 말솜씨 등 '탤런트 기질'만 부각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 토론회 때문에 못 살겠다.”
언제부터인가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국민신당 등 각 당 선거관계자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이다. 대선후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TV 와 신문사 등 언론사가 주최하는 각종 토론회에 참석해야 하다보니 ‘죽 을 맛’이라는 불평이다. 대선후보들이 감당하기에는 각종 토론회 횟수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TV토론회를 새로운 정치의 ‘만병통치약’으로 기대했던 애초의 환상도 서서히 깨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TV정치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행착오로 치부하기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크다.
방송사 토론회만 선거 전까지 30여회
올해 본격적인 TV토론회는 지난 5월1일 문화방송이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가 시발이다. 그 뒤로 한국방송공사와 서울 방송 등이 다른 중앙 일간지와 함께 경쟁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기 시작 했다. 지금까지 중앙3개 방송사가 주최한 공식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만도 무려 8번이나 된다. 앞으로 남은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 주관의 3차례에 걸친 후보자간 합동토론회 중계'까지 포함시키면 사실상 중앙 3개방송사 주최 토론회는 11차례나 되는 셈이다. 여기에 아침시간대의 여성프로나 대담프로, 연예프로 등에서 후보자들을 초청해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한 간이 토론회도 TV와 라디로를 합쳐 4번이나 이뤄졌다. 이들 방송 외에 기 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이 개별적으로 각 1회씩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개최 했다. 지방방송사들도 개별적으로 모두 7차례나 후보자 초청 지방방송 토 론회를 열었다.
여기에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과 여성신문사, 보수적 논객을 자처하 는 <한국논단> 등에서 주최한 토론회 역시 TV나 라디오를 통해 중계돼 사 실상 TV토론회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한국일보가 주최한 ‘97 대선과 우리 정치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한 신문사 토론회와 동아일보가 주최 한 3당 후보자간 합동토론회도 방송사나 뉴스전문 유선방송인 YTN을 통해 중계되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대선후보초청 토론회는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가 주관하고 중앙 3개방송사가 공동 중계하는 3당 후보자간 합동토론회로 오는 12월1 일과 7일, 14일 등 세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앞으로 남은 선거방송위 주 관의 3차례 토론회를 포함해 올 대선과정에서 이뤄지는 방송사 토론회는 모두 30여차례나 된다. 방송사와 별도로 중앙 일간신문사와 지방신문사들 이 주최한 후보자 초청 토론회도 이미 10여차례나 이뤄졌다. 가히 언론사 토론회 홍수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각종 토론회가 이처럼 중구난방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토론회 형식이나 편 파성 등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TV토론회는 처음에는 개별 방송 사와 개별 신문사의 단독 주최형식으로 진행되다 언론사간 경쟁이 치열해 지자 개별 방송사와 한국신문협회 공동주최로 바꿨다. 그 이후 다시 중앙 방송3사의 방송협회와 한국신문협회가 공동주최하는 형식으로 바꾼 데 이 어 3당 후보자간 합동토론회는 민간주도의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 가 주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언론사 사세 경쟁에 후보들만 녹초
언론사의 경쟁적인 토론회는 후보들을 녹초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 10월 28일에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는 오전에 한국논단의 ‘사상검증토론회’에 참석한 데 이어 오후에는 관훈클럽 주최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하루에 두 번 토론회에 참석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지난 11월12일부터 14일 사이 에 진행된 방송3사 합동토론회에서는 질문자로 나선 패널리스트의 편파성 이 정치쟁점화되기도 했다.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은 일부 질의자들이 이회 창 후보에 대해서는 정치입문 과정에 대한 위로성 질문을 하면서 김대중 후보와 이인제 후보에 대해서는 고령과 경선불복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해 흠집내기에 앞장섰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극우성향을 갖고 있는 월간지 < 한국논단>이 주최하고 한국방송공사가 중계한 ‘대통령후보 사상검증토론 회’는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의 횡포라고 하지 않 을 수 없다. 후보들은 현실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울며 겨 자먹기’식으로 언론사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 전북대 김승수 교수(언론학)는 “미국 같은 경우도 대선후보자 토론회는 모두 3∼4차례 정도”라며 “너무 많으면 오히려 후보자간 변별력이 떨어지고 순간적 재 치와 말솜씨 등 주변적 기술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성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