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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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00년대 초반까지 작업불량을 수주한 상태에서 50% 감원 결정을 내린 것은 회사를 매각하기 위한 전단계라는 소문이 빠르게 돌고 있다.)
목포공항에 도착했다. 초겨울비가 추적추적 코트를 적신다. 선입관 때문 일까. 비라기보다는 눈물 같다. 근로자의 눈물, 목포의 눈물, 대한민국의 눈물이다. 한라중공업 삼호조선소로 향하는 공항택시 안에서 묻지도 않았 는데 운전사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공항 손님이 뚝 떨어져 죽겠어라우 .” 더이상 말이 없다. 그 한마디가 이 지역 사정을 단박에 말해준다. 손 님이나 운전사 모두 기다란 한숨뿐이다. 한참 동안의 어색한 정적을 깨고 이번에도 운전사가 먼저 말을 붙인다. “이제 목포·영암 경제는 끝장나 버렸지라우. 한라중공업이 그 지경이 돼뿌렸으니. 우리만 해도 조선소에 업무보러 오는 사람이 없으니 이제 우째 살라카요.”
그래도 형편 나은 내가 떠나야지
지난 11월25일, 한라중공업이 전 직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3천명을 감원하 겠다고 발표한 뒤로 그 파장은 목포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촉수를 뻗쳐 나 가고 있었다.
감원발표 이후 한라중공업은 거의 ‘무정부상태’다. 조금 과장을 붙인다 면 말이다. 물론 겉모습만 보면 회사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망치는 잡고 있으되 휘두르지 않는다. 용접봉은 손에 들 려 있지만 용접불꽃은 보이지 않는다. 전화통은 귀에 대고 있지만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작업 의욕도, 그렇다고 작업을 독촉하는 사람도 없 는 듯하다. 말단 직원부터 임원까지 누가 ‘절반의 살생부’에 오를지 모 르기 때문이다. “너 아니면 나.” 두명 가운데 한명은 올해 안으로 회사 를 떠나야 한다. 일손이 잡힌다면 되레 비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서슬퍼런 감원의 칼날은 일차적으로 관리직 사원을 향하고 있다. 회사도 공식적으로 생산직보다는 관리직 인원의 감축이 많을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외부의 인터뷰에 대해 모두 침묵한다. 미운털까지 박히면 행여 리 스트에 없던 자신의 명단이 살생부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 아니면 체념 때문일까. 그나마 조금이라도 입을 여는 사람은 “회사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다.
관리부문쪽의 한 차장은 자신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미 련없이 나가겠다고 말한다. 자신은 부인이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 으니 그나마 입에 풀칠하기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떠나겠다는 마음 을 굳히고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당분간은 아내에게 ‘더부살이’를 해 야 하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 녀석이 아빠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것도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액화천 연가스(LNG) 준비팀의 한 차장도 “40대가 되면 자기 인생에 전환기를 모 색해야 되지 않겠냐”며 희망퇴직을 신청할 뜻임을 내비쳤다. “더이상 묻지 말아달라. 이제 내 인생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힘빠진 목소리에 실려오는 짙은 슬픔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이쯤되면 더이상 인터뷰를 하는 것은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괴롭 다.
왜 경영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느냐
사정이 이러니 각 관리부서의 분위기가 어떠할지는 금방 짐작이 간다. 국 내영업, 해외영업, 동남아시아 영업부문으로 구성된 영업팀. 직원 22명 가운데 절반 정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근을 나간 게 아니다. 한 사원은 “휴가를 내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러 간 것”이라고 귀띔한다. 영 업팀은 기껏해야 2∼3명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백방으로 직장을 수소문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해외영업지점도 폐쇄되고 해외지사 직원들까지 정리해고된다는 설이 나돌면서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졌다. “ 이제 아무도 회사를 믿지 않아요. 각자 살길을 찾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 데 영업팀은 대개가 상경대학 출신이라 전직이 쉽지 않아요. 게다가 사회 분위기까지 이 모양이니….”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가. 누가 이들의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 고 있는가. 회사 관계자들은 “그동안 무책임하게 국가 경제를 운영해온 정부의 탓”이라고 말한다. 설령 그렇다고 해서 기업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직원들은 그동안 방만하게 회사를 운영해온 경영진을 질타한다. 새로운 조선소에 1조원에 달하는 무리한 차입금을 들여와 투자 하면서 극심한 자금압박을 받아온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게 다가 낮은 기술력으로 저가 덤핑을 하면서 수주액은 많지만 실제로 이익 은 남지 않았다고 한다.
정작 직원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경영진의 태도다. 한 관리직 사원은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경영진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게다가 부회장이라는 사람은 담화문 하나만 턱 발표하 고 뒤로 물러섰다. 단 한줄도 담화문에 ‘내 책임이다’ ‘기업 책임이다 ’ ‘미안하다’는 말이 없었다. 오직 회사가 어렵다, 같이 허리띠를 졸 라매자는 말뿐이었다. “우리가 일을 안 해서 회사가 어려움에 빠진 겁니 까. 회사가 진정으로 고통분담을 할 생각이라면 경영진도 현장에 내려와 기름밥을 먹으며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설계부문의 이아무개 대리는 요즘 하루일과만 생각하면 스스로 비참한 기 분에 빠진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면 제일 먼저 맞부닥치는 게 회사이야기로 도배된 뉴스다. 머리끝까지 오르는 신경질 때문에 발길 질로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회사에 출근해 책상에 앉으면 머리가 멍하다. 직원들끼리 눈길이 마주친다. 뭔가 감원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없느냐는 눈치다. 설계부문은 몇명이나 잘릴까 신경이 곤두선다. 슬쩍 부장 얼굴을 쳐다본다. 부장의 얼굴도 며칠새 ‘맛이 갔다’. 얼굴이 누렇게 떠버렸다 . 입에서는 술냄새가 팍팍 풍긴다.
부장이라고 감원태풍을 피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감원의 1차 대상이다. ‘ 최신 정보’가 생기면 부장이 먼저 직원들을 불러 모아 알려준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감원수치에 따라 증권사 객장처럼 탄식과 환호성이 오락가락 한다. 그러다가 자리에 앉으면 걱정해 주는 친지나 친구의 전화가 걸려온 다. 상대방의 마음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아 괜 스레 기분이 상한다. 자판기 앞에서도 직원들의 쑥덕거림이 이어진다. 내 용은 뻔하다. “희망퇴직하면 위로금은 얼마나 준다냐”, “너희 부서는 나간다는 사람이 몇명이냐”, “요즘 잘되는 장사가 있느냐” 따위다. 책 상에 앉아서 설계도면을 뒤적뒤적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설계 가 틀리면 생산 현장에서 문의전화가 오거든요. 그런데 하루에 20통 오던 전화가 요즘은 5통도 채 안 됩니다.” 현장 노동자들도 일을 안 하고 있 다는 증거다. 어찌어찌하다 보면 시커먼 재 한삼태기만 가슴에 남은 채 금세 하루해가 저문다.
파괴당한 사원아파트의 공동체 문화
생산직 사원들의 분노는 관리직보다 좀더 직설적이고 격한 편이다. 60% 이상이 현대 대우 삼성 등 다른 조선소에서 일하다 전직했다고 한다. 고 향인 목포에 조선소를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퇴직금이나 경력의 불이익을 감수하며 왔다는 것이다. 용접부문 김아무개(34)씨도 현대 미포조선소에 서 7년을 근무하다 고향을 찾았다. 지난 96년 조선소가 가동되고 회사가 ‘우리는 한배에 탄 운명’이라 할 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객지에서 적응하지 못하다 고향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지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회사는 사원들을 버린 자식 취급하고 있다. 생각하긴 싫지만 만약에…. 당장 집을 마련할 일이 걱정이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만원 하는 사원아파트 하나만 믿고 지내왔던 것이다. “이 추운 겨울에 나가서 죽으라는 이야기냐. 회사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밖에 나가서 죽으 나, 여기서 싸우다 죽으나 마찬가지다. 고양이도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 놓고 쥐를 몬다고 했다.”
한라중공업 뒤쪽으로 산을 깎아 만든 사원아파트에도 찬바람이 일고 있다 . 감원이 되면 옆집이나 우리집 가운데 하나는 터전을 떠나야 한다. 주부 임아무개(37)씨는 공동체 문화가 파괴되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고 말 한다. “작년 5월 1천2백세대가 입주한 뒤로 서로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 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막 정을 붙이고 살만했는데 돈독한 분위 기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어요. 옆집 아주머니는 벌써 아침에 신문배달을 시작했어요.” 아이들끼리도 “너희 아빠 어떻게 된다니?” 하며 수군거 리는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회사의 방침에 대해 노동조합은 강경대응을 천명했다. 11월27일, 회사의 감원발표 이틀 뒤 대의원 간접선거로 선출된 신임 송관엽 노조위원장은 생산직·관리직을 불문하고 단 한명의 감원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회 사의 감원발표 이면에는 현대에 한라중공업을 매각하겠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50%를 감원한 뒤 회사가 정상적으 로 운영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일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일할 수 있는 물량을 수주해 놓은 상태입니다.” 결국 50% 감 원은 매각을 위한 가지치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완벽한 사기극이다. 회사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전 직원들은 매각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라중공업 발표 이후 지역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빠르게 드리워지고 있다. 한라중공업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목포 신도시 아파트 밀집지역. 이 지역 최대의 백화점인 프레시마트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한라 직원들에게 월급이 지급되지 않으면서 매출이 20% 가량 줄었는데, 감원발 표로 앞으로의 사태를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직 전체적인 통 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숙녀복 코너는 감원발표 이후 평균매출의 60%를 밑돌고 있다. 목포·영암 일대 지역경제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절망의 끝… 희망은 그 어디에
한라중공업 사원들에게 절망의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니 절망의 끝 건너편에 있다는 희망이 보일 리 없다. 거리나 작업장에는 처진 어깨, 찌 푸린 얼굴들뿐이다. 하지만 한라중공업은 현재 우리 경제의 축소판일 뿐 이다. 무리한 신규투자, 거기에 따른 빚잔치, 원칙없는 정부 정책, 노동 자들에게 고통 이전, 거리를 배회하는 노동자. 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가 그러하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