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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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경제주권 상실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된 김영삼 정권의 전임 경제부총리들.왼쪽부터 이경식 정재석 홍재형 나웅배 한승수 강경식씨.)
IMF 구제금융 요청은 한국경제의 부도유예 선언임과 동시에 한국 정부의 항복선언이다. 누가 IMF 신탁통치를 초래했는가라는 질문에 정부와 재벌 기업들이 절반씩의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김 영삼 대통령은 부총리 한명을 경질하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이유는 자명 하다. 김 대통령 자신이 총체적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5년 전 신한 국 건설이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신경제 5개년 계획(93∼97)이라는 장밋빛 그림을 그렸지만 성장(연평균 7%), 물가(2.9%), 국제수지(95년부터 흑자 전환) 등 그 어느 한 부문에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작은 정부를 내세운 김영삼 정권 아래서 공무원 수는 92년 88만6천여명에 서 96년 92만5천여명으로 늘어났다. 스위스 국제경영원이 발표한 세계 46 개국 경쟁력 평가에서 정부부문은 36위로 우리나라의 종합순위(31위)에도 못미쳤다. 한국 관료사회가 고비용 저효율의 거대한 공룡조직이라는 점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4대 경제개혁 중의 하나로 제시된 금융개혁은 끝내 용두사미로 끝나 오늘 날의 비극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재경원의 한 국장은 “차입을 통한 신규투자와 다시 그것을 담보로 한 차입과 투자라는 대기업들의 거 품경영에 대한 경고가 80년대 말부터 제기됐지만 결국 기득권을 놓지 않 으려는 대기업과 금융을 권력의 프리미엄으로 생각한 정치권, 그들 사이 에서 눈치보기로 일관한 정부관료들 때문에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 한탄했다.
김영삼 정권에서 경제수장을 지낸 이경식, 정재석, 홍재형, 나웅배, 한승 수, 강경식씨 등 6명의 부총리는 무덤 뒤까지 경제주권 상실의 원흉이라 는 오명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과 경제부처 사이에서 연결고리 구실을 한 박재윤, 한이윤, 구본영, 이석채, 김인호 경제수석 등 5명도 마찬가지다. 관치금융이라는 꿀단지에 빠져 단물을 빨아 먹는 데만 정신이 없었던 옛 재무부와 재경원의 고위관료들도 책임을 피할 길 이 없다. 그 핵심에는 금융담당 관료들이 자리잡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의 한 국장은 “지난 96년 재벌의 차입경영을 수술하기 위해 당시 김인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그룹들의 상호지급보증을 0%로 줄이자는 안을 제시 했지만 재경원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