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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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귀/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국민들은 지금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의 위기마저 느끼고 있 다. 경제위기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방이 제시되지 못하 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국제통화기금(IMF)의 신탁 통치를 받아야 할 입장이다.
특혜금융, 썩은 정치, 단기외국자본…
현 경제위기의 요인은 무엇인가? 우리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 간단히 요약하면 특혜금융과 상호지급보증, 다국적 기업세력의 음모이 다. 정치권은 정치자금의 대가로 재벌 등 대기업들에 정책적 특혜금융을 베풀었다. 은행금고가 재벌금고였다. 때문에 재벌들은 자기자본이 있든 없든 마음껏 투자를 했다. 그 결과 높은 부채비율과 과잉중복투자가 일반 화되었다. 또한 돈 일부는 부동산투기에 사용됐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 일부는 다시 정치인들 뒷호주머니로 들어갔고 그중 콩고물이나 떡부스러 기를 제외하고는 상당부분이 독재정권, 부정부패정권을 유지하는 정치공 작비로 사용되었다. 물론 이들 정권들은 노동운동을 탄압함으로써 재벌의 축재를 도왔다. 상호지급보증제는 실제 담보력과 무관한 융자를 가능케 함으로써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가능케 했다. 이로 인해 재벌의 한곳 만 흔들려도 재벌 전체의 기둥뿌리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했 다.
이번 경제위기를 더욱 격화시킨 것은 외국자본들이다. 우리나라로 들어온 단기자금들이 갑자기 빠져나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미국 신문등은 한국경제의 위기를 과장 보도함으로써 외화자금의 유출을 촉진했고 이에 따라 외환위기가 오자 한 미국 신문은 IMF구제금융만이 해결책이라고 떠 들어 댔다. 재경원은 IMF 구제금융이 있게 되면 IMF 간섭으로 한국은행은 강화되고 자기들은 약화되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했다는 설도 있지만 결국 미국 정부 마음먹은 대로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결과는 그 예측대 로였다. 다른 데 손을 벌려봤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결국 우리 정부는 항복문서를 제출했다. IMF 구제금융은 경제신탁통치를 의미하지만 그 신탁통치 기간중 IMF는 우리나라 시장개방, 기업구조 조정 등 외국자본과 상품이 우리나라에 활개치고 들어올 수 있는 고속도로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복장터질 일은 우리 경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있는데도 일반 국민 들이 내뱉듯이 책임지는 X 하나 없다는 점이다. 그간 이 권력 저 권력, 권력의 가랭이 밑을 기어다닌 정치 재주꾼들은 오늘의 경제위기에 대해 절대적인 책임이 있음에도 자기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경제위기를 해결할 능력자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책임지기는커녕, 그간 산업역군이라는 억지 칭찬을 들으며 묵묵히 일해온 그 노동자들을 향해 감원과 임금삭감으로 답례를 해대고 있으며 경제위기 분위기를 이용해 그간 침흘려온 감원을 준비하고 있다. 실업자가 1백50만명이 더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취약한 경제체질은 고쳐져야 한다. 거품은 철저히 짜내져야 한다. 무엇보 다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 국민 모두가 합심하는 것이다. 그 러기 위해서는 지도층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기업들은 무 조건 감원의 칼을 휘두르기보다는 종업원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자기 희 생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노동자들도 위기 극복을 위해 마음을 합치게 될 것이고 나아가 오늘의 어려움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용지키기 위해 경영진은 무엇을 했나
그러나 정부나 기업이 지금처럼 노동자의 희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면 많은 것을 잃게 되고 사회적 갈등의 고조는 불가피하며 경우에 따라 노동자쪽의 폭동적인 투쟁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감원이 불가피 한 경우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기업주 스스로 먼저 희생하 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자신의 경영책임을 겸허히 인정해야 하며 노동자 의 고용을 지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도 불가피한 경 우는 노조나 노동자 대표와 충분히 협의하여 노동자에게 가장 고통이 적 은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는 지금 시기를 비상시기로 규 정하여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히 규제하고 고용보험과 직업알선기능을 대 폭 강화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지금이 경 영합리화의 기회라 하여 감원을 해대는 그런 처사만은 절대로 규제해야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