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삶

생태마을, 흙에 생기를…

(사진/유기농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땅을 바꿔야 한다. 논바닥에 두껍게 깔린 짚은 잡풀을 억제하고 썩으면서 거름이 된다.)

농한기 늦은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어슬렁어슬렁’ 논으로 나섰다. 논엔 썰다만 짚단 몇개가 놓여 있다. 서슬퍼런 날보다는 등까지 누렇게 얹힌, 녹이 먼저 눈에 띄는 낡은 작두를 어깨에 메고 계곡쪽으로 향했다. 허병섭(57)씨가 올해 새로 사들인 광대정 입구의 다랑논이 있는 곳이다. 논바닥에 작두를 척하니 부려놓고 짚단을 썰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하오 동에 ‘귀농’한 전제원(32)씨가 짚단 몇개를 들고 따라나섰다. 녹슬었어 도 작두는 이름값을 하는지 ‘써걱써걱’ 소리도 상쾌하게 가지런히 썰린 짚단을 옆으로 뱉어냈다. 썬 짚을 20cm 두께로 논바닥에 깔아야 한다. 논 바닥에 짚이 두껍게 깔려야 잡풀을 억제하고 썩으면서 거름이 된단다. 특 히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는 ‘관행농’이 익숙한 이런 논에는 짚단을 두 툼하게 잘 깔아줘야 한다. 유기농의 기본이란다.

애초 논이라고 부르기에도 옹색한, 산비탈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은 좁다란 다랑논을 모조리 짚단으로 덮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참 넓어보인다 . 그래도 겨울나기 준비로는 가장 큰 일이다. 날씨가 좋아지면 귀농식구 들을 모조리 데리고 끝낼 참이다.


빈민운동가 허병도 목사 등 6가구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생태마을’을 준비하는 여섯 가구가 잠시 둥지를 튼 곳이다. 안성천을 끼고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회효리, 하오동 , 원촌리, 진안군 동향면 학산리 등에 흩어져 둥지를 튼 이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귀농’과 ‘광대정 생태마을 준비’로 묶일 수 있다.

무주군이니 진안군이니 경계로야 군을 달리하지만 기껏해야 5분 거리다. 무주에서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리는 바람에 덩달아 도로망이 잘 정비된 탓이다.

(사진/광대정 사람들은 생태마을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전제원씨 부부. )

이들에게 올 겨울은 정말 특별하다. 농사일을 마무리지은 올 가을부터의 작업이 ‘생태마을’의 기본꼴을 갖추는 데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생태마 을 예정지를 정했고 몇 가구는 집터를 사들이거나 임대했다. 허씨가 근 2 년을 작업한 결과였다.

지난해 4월이었다. 74년부터 빈민운동과 인권운동을 벌여온 도시빈민선교 회의 ‘허 목사’는 서울에서의 삶을 모조리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했다. ‘목사’라는 직함도 함께 떼버렸다. 그래도 그를 아는 사람들의 입에는 늘 ‘목사님’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다. ‘도시적인 삶’과의 단절을 선 언하고 ‘환경친화적인 생태농업’을 해보겠다는 결심과 함께 비어 있던 집 한채를 얻었다. “농촌은 죽어가는 곳이 아니고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 져 사는 곳이다. 지금 농촌이야 인간이 자연을 압도하며 화학비료와 맹독 성 농약을 뿌려대고 있지만 앞으로 이런 농촌은 살아남기 힘들다.”

논도 두마지기 사들였다. 짐을 풀자마자 못자리부터 해치웠다. 관행농에 지칠대로 지친 땅이건만 첫해 쌀 네 가마를 내주었다. 초보농사꾼이 환호 할 만한 양이었다.

“올해는 좀 못해. 네마지기로 늘렸는데 글쎄 소출은 지난해랑 똑같지 뭐 야. 날씨가 따뜻해 도열병에 멸구까지 기승을 부리는데, 농약 안 쓰려니 소출이 똑 떨어지는 게 당연하겠지. 그래도 줄어드니 섭섭하더구만. 자연 농업이 제대로 되려면 3∼4년은 걸린대잖아.” 그는 ‘태평농업’을 올 가을부터 시도했다.

벼를 베어내면서 짚단을 그대로 바닥에 깔고, 또 땅도 갈아엎지 않은 채 밀과 보리 씨앗을 뿌린다. 내년에 밀·보리를 거둬들이면서도 보릿대와 밀대를 그대로 두고 똑같은 식으로 벼를 직파할 작정이다.


개발 가능성 전혀 없는 선정부지

태평농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복잡한 생각 속에도 허씨의 머리 속에서는 생태마을 부지가 떠나질 않는다.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어. 맘에 들 것 같으면 땅값이 비싸고 또 싼 곳으로 가면 주인이 안 내놓으려 하고. 몇개월을 떠돌았는지 몰라. ” 거기엔 생태마을 부지에 대한 그의 까다로운 ‘선정조건’ 탓도 있었 다.

첫째로 경관이 아름답되 너무 수려하지 않아야 했다. 너무 빼어나면 누군 가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설 염려가 있다. 둘째로 인적이 드물면서도 교통은 괜찮아야 했다. 어차피 은둔생활이 아니라 새로운 실험을 위해 선 택한 것인 만큼 생태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개발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이어야 했다.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 으면 주민들은 땅을 내놓지 않는다. 몇푼 안 되는 돈을 지금 쥐느니 버려 뒀다 땅값 오를 때 팔겠다는 심리 때문에 땅값이 턱없이 높아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이다. 유기농업이든 태평농업이든, 관행농이든 중요 한 것은 이 농사꾼들이 씨를 뿌릴 땅이 있어야 한다.

광대정은 사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는 드문 곳이었다. 남쪽을 향해 포근하게 품을 벌린 덕유산 자락 속에 파묻힌 이 남향 계곡은 햇빛 이 많이 들어 다른 곳보다 유난히 따뜻하다. ‘광대정’이라는 이름도 그 래서 갖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광대정을 발견하고 나서 허씨는 이젠 귀농식구를 불러내려 본격적 으로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4월에 성남에서 어린이 전문 서점을 운영하던 권혁찬(40)씨 부부와 두 아이들이 이곳 봉곡분교에 둥지 를 틀었다.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운영하는 귀농학교 1기생으로 아이들 교 육문제가 걱정돼 귀농을 결정했다고 한다. “처음 지었는데 이태째인 목 사님네보다 수확이 좋아요.” 부인 정영순씨의 자랑이다.

귀농 첫해니만큼 주위에도 인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정씨는 올해 김 장용 배추를 1백20포기나 절여놓았다. 네 식구 30포기 외에는 모두 친정 어머니와 친구들 몫이다. 양념을 싸들고 오겠다는 친구들이 김장 품앗이 에 나서겠다고 한다.


논바닥에 짚단 뿌리며 유기농법 익혀

(사진/흙집으로 태어날 마을회관을 가리키는 허병섭씨 )

2기생인 박창호(28)씨 부부와 채승일(28)씨 부부도 지난 8월 학산리와 회 효리에 내려왔다. 허 목사와 빈민운동을 하며 알게된 서른두살 동갑내기 부부 전제원·안금순씨도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들 ‘나무’와 함께 이 곳으로 향했다. 충북 괴산의 흙살림연구소에서 유기농법을 연구해온 전씨 는 결혼하자마자 “산에 들어가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안씨는 남편 의 난데없는 산타령에 어리둥절해하다 광대정 생태마을을 선택했다.

가장 최근에는 심재욱씨 부부가 찾아들었다. 안성천 자락을 끼고 여섯가 구가 점점이 흩어진 셈이다. 그러니 짚단깔기 작업은 여섯가구가 힘을 합 하면 하루이틀이면 충분할 듯싶다. 유기농법 강좌에 쫓아다니느라 집에 붙어있질 않는 식구들을 불러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짚단을 논바닥에 뿌려두고 생태마을이 들어설 광대정으로 발걸음을 재촉 했다. 논둑길과 새로 뚫린 삼림도로를 번갈아 걷기를 30분. 계곡 속에 숨 어있던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마을이라기보다는 마을이 있던 자리다. 비 탈 어디에 17가구가 들어앉을 자리가 있을까 못내 의심을 품을 즈음이었 다. 좁다란 골짜기 계곡물 한자락이 흘러들어 좌우로 가르며 관통하고 있 다. 1시간이면 참게를 한푸대씩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물이다. 젊 은 세가구는 광대정을 보곤 홀딱 반해버렸다.

이곳도 올겨울엔 이들이 일터로 삼아야 할 곳이다. 집이 있던 터의 잡풀 을 베어내고 터를 다져야 한다. 아궁이를 만들 참이니 구들도 구해야 한 다. 날씨가 풀리는 내년 4월께부터는 집을 짓기 시작할 참이란다. 집짓기 를 준비하느라 전씨는 날씨만 괜찮으면 매일 이곳에 오른다. 구들을 줍고 풀을 베고 터를 가늠해본다.

“여기가 승일이네가 살 집이고 요쪽은 전제원이네, 그리고 이쪽은 창호 네 집터….” 잡풀만 무성한데 ‘생태마을’을 설명하는 허씨의 눈에는 벌써 마을꼴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마을의 유기성을 살리기 위해 독 일 생태마을 조성과정에 참여했던 젊은 김태수씨가 마을 설계를 맡을 예 정이다. 그라면 들쑥날쑥하지 않고 ‘자연권’을 보장할 수 있는 소박하 고 아름다운 생태마을의 밑그림을 아주 잘 그려줄 것만 같단다. 어렵게 발견해낸 생태마을 부지인 만큼 애정도 각별하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 고 자연파괴적인 재료도 쓰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흙집이다.


잡풀 무성한 집터에 자연을 심는다

허씨는 “젊은 시절 미장일을 배워뒀다”며 “날씨가 풀리고 흙집 지을 때가 되면 솜씨를 발휘해 볼 것”이라며 웃는다. 그는 광대정 들머리쪽에 집터를 봐뒀다.

경운기도 다니기 힘들 정도로 험한 산길을 따라 30분 들어서야 하는 해발 5백m의 골짜기까지 재료를 나를 일이 걱정스러워 슬그머니 “운반은 어떻 게 할 거냐”고 물었다. 생태마을 준비생들은 까르르 터지는 웃음으로 먼 저 답을 대신한다.

“덕유산 자락에 널린 게 다 재료지. 산이니 나무 있고 흙 있고 그러면 됐지 뭐. 여기 흙 많∼소. 조금씩 덜어내 쓰면 되지.” 이들은 생태마을 이라는 이름에 맞게 흙과 나무로 자연스런 집을 지을 참인데 기자는 콘크 리트와 시멘트, 벽돌 식의 집짓기 재료만을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해발 5백m나 되는 곳인데도 이름탓인지 가을햇살이 봄볕만큼이나 따사롭게 마 을을 비추고 있다.

집터 고르기도 예삿일이 아닐텐데…. “산림도로 닦는 포클레인을 하루정 도 부르면 돼요.” 잡풀을 잘라내는 전제원씨의 한가로운 말이다. 며칠동 안 비가 내려 포클레인이 계속 작업날짜를 늦췄다. 30일께 이곳 터를 다 지기 위해 올라올 참이다. 올겨울엔 터를 예쁘게 다져야 한다. 틈틈이 폐 가에서 구들도 떼어다가 준비하고 있다.

“시골에는 항상 땔감이 있잖아요. 그래서 난방을 뭘로 하건 반드시 구들 을 들여놓을 생각이에요.” 지금 살고있는 하오동 집에도 구들이 있어 가 끔 잔가지를 주워다 불을 지피기도 하는 전씨의 말이다. 삼림도로를 내느 라 버려진 잔가지로 나무 한단은 벌써 해놓았다. 길가에 베어넘어진 나무 들은 흙집 짓는 데도 귀한 재료가 될 것이다.

눈을 뒤집고 계곡을 살피니 얼핏 논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농민들이 버리고 떠난 묵정밭과 논들이 어느새 산으로 변해가 는 참이다. 광대정 안에만 3만여평의 논밭이 있단다. ‘생태마을’ 사람 들은 이 가운데 4천5백평을 사들였다.

그런데 흙집을 지어나 봤을까. 그러자 진도리 마을회관을 데리고 간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완벽한 흙집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정기용씨가 건축한 흙집은 기둥과 줄거리가 다 만들어졌고 벽 일부도 세워져 있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탓에 흙벽에는 비닐이 둘러쳐 있다. 마른 흙으로 세워진 벽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흙으로 마을회관 지어… 할 일이 태산

“이게 국내 최초로 지어지는 완벽한 흙집이요. 못하나 안 쓰고 나무를 끼워맞췄고 벽은 마른 흙을 다져서 넣고 있지요.” 허씨의 말에선 자랑조 차 묻어난다. 진도리 마을주민들이 마을기금 1천만원을 털고 무주군과 전 라북도가 각각 2천만원씩 지원하는 60평 규모의 2층 흙집. 그래도 그의 넓은 발이 없었더라면 이 회관은 태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흙집 회 관을 짓는 과정이 곧 생태마을 건축을 위한 실험이기도 했다.

광대정 생태마을은 안성면 죽천리에 들어설 예술인 마을과 함께 무주군에 환경친화적인 교육기관을 세울 계획이다. 그 시작은 지난 20일 부지계약 을 마친 ‘푸른꿈 고등학교’가 될 것이다. 미니대학을 세울 꿈까지 키우 고 있지만 아직은 구상단계일 뿐이다.

이래저래 할 일이 많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할일이 너무 많네요”라 하니 “차차 하면 되지요”라고 되받는다. 어느새 농사꾼의 여유부터 배 웠나보다. 무주로 뻗은 덕유산 자락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모색 하는 사람들로 이번 겨울이 더욱 분주할 참이다.

무주=송현순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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