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
(사진/두차례나 국경지뢰밭으로 추방된 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홍영실씨. 사진은 올해 초 탈북 당시의 앙상한 모습.)
통일강냉이팀은 지난 10월20일 베트남 한국대사관에 인계한 13명 중 한명 인 홍영실(35·여)씨가 11월15일 보내온 구조요청을 듣고 급히 `인접국' 으로 건너가 그를 만났다. 홍씨는 통일강냉이 관계자에게 “한국대사관이 베트남 관계자에게 인계한 바로 다음날 국경지대에 추방됐다”면서 “베 트남 내무부 관계자가 ‘한국 정부에서 당신들을 받지 않겠다고 해 추방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현재 홍씨는 '인접국'의 한 비 밀장소에 숨어 있다. 이 관계자가 홍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한국대사관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대사관에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설미 엄마 김옥란(39)씨가 졸도해 신체 마비 상태가 됐다. 이로 인해 하노이 국제병원에 입원한 김옥란씨를 제외 한 나머지 12명이 11월8일까지 대사관에서 관리하는 한 아파트(안기부 안 전가옥으로 추정)에서 생활했다. 이때 대사관 직원들이 임신부인 송춘옥 씨 태아 건강체크까지 했다. 그러나 19일 동안 서면으로 진술서만 한번 받고 어떤 조사도 받지 않았다.
-언제 베트남 관리에게 넘겨졌나.
=11월9일 오전 9시다. 베트남 정부로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며 대사관 직원들이 많이 나와서 차에 태웠다. 차는 베트남 정부 내무부로 이동했는 데, 도착하자마자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하나씩 슬그머니 빠져 어느새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 사람들만이 주변을 에워쌌다. 오후 1시 께부터 차에 태워져 오후 6시께 국경도시에 랑손에 도착했다.
-언제 인접국 국경으로 추방됐나.
=11월10일 오전 10시30분께다. 차로 군대막사가 있는 곳까지 가 인접국으 로 추방됐다. 곧 인접국 변방부대에 잡혀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계속 인접국쪽에 잡혀 있었나.
=아니다. 11월11일 오후 5시30분께 인접국 변방경비대 군인들은 우리를 전원 차에 싣고 10여분간 가다 산길에서 내리게 한 뒤 총구로 등을 밀어 다시 베트남으로 내몰았다. 이후 오후 6시께 베트남 변방군인들에 다시 잡혔다. 이때 남자들에게는 모두 손에 족쇄가 채워졌다. 이를 본 형일이 엄마는 두 아들이 족쇄에 채워져 끌려가는 것을 울며 뒤따라가다 정신이 나가 계속 토했다. 모두 정신이 없었다. 이불 한장 없는 실내창고에 갇히 자 송춘옥씨가 뱃속의 아이가 발길질을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언제 또다시 인접국쪽으로 추방됐나.
=11월13일 오후 2시다. 이날 아침에는 처음 강제추방을 담당했던 베트남 내무부 책임자가 다시 왔다. 그는 “한국 정부가 당신들을 받겠다고 하면 2∼3일 내에 한국에 갈 수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서 당신들을 받지 않겠 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때 말이 통했던 형일이 엄마가 북조 선에 넘기면 우리는 쇠갈고리에 코와 손이 꿰어져 짐승처럼 끌려가 죽는 다며 애원했고, 모든 사람들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러나 오후 2시께 서 너명씩 달라붙어 강제로 호텔방에서 끌어내 호송차에 태운 뒤 다시 추방 했다.
-다시 모두 인접국 군대에 잡혔나.
=아니다. 내가 맨 마지막에 추방됐는데, 나를 잡은 인접국 군인은 ‘여덟 명 어디갔느냐’고 물었고, 내가 갇힌 군부대에도 나 혼자뿐이었다. 나머 지 사람들은 모두 길을 벗어나 지뢰밭쪽으로 도망간 것 같다.
-어떻게 인접국 군부대에서 풀려났나.
=11월13일 잡히면서부터 계속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하자 14일 오전 군인 몇명이 내쪽을 처다보며 상의하다 부대 밖으로 내보냈다. 이들은 내가 북 조선에서 온 것을 지도로 확인했다. 이때 나는 그곳으로 가면 죽는다며 내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 처지를 불쌍히 여긴 것 같다. 군부대에서 풀려난 뒤 길바닥을 헤매고 있었는데 한 한족 할아버지 가 도움을 줘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1일 제 1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