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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진실(6) 축구에 미친 훌리건의 난동

(사진/영국의 축구팬은 경기보다 난동을 즐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경기가 중단된 가운데 훌리건의 아일랜드 축구팬을 집단 폭행하고 있다. )

그 많은 스포츠 가운데 왜 유독 축구에서는 숱한 사상자를 내는 끔찍한 난동이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축구사상 최악의 참사는 64년 5월24일 페루의 리마에서 일어났다. 도쿄올 림픽 남미지역예선 페루-아르헨티나전에서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은 페 루 관중들이 흥분한 나머지 큰 소란을 일으켜 3백18명이 죽고 약 8백명이 다쳤다. 이날 경기장은 4만5천명의 관중들로 메워져 있었으며 소란을 가 라앉히려고 경찰이 쏜 최루탄이 오히려 공황을 불러일으켜 출구로 몰려든 관중들이 겹겹이 넘어져 깔려 죽거나 다쳤다. 경기는 아르헨티나가 페루 를 1-0으로 꺾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우리나라에서도 1930년대 전반 가장 큰 축구행사였던 서울과 평양, 두 도 시팀의 대항전이었던 경·평전이 35년 4월 서울운동장에서 치러진 경기를 마지막으로 중단되고 만 것도 심판의 판정을 둘러싼 말썽과 응원단끼리의 잦은 싸움이 그 원인이었다.


페루에선 응원단 3백여명 사망하기도

94년 미국 월드컵 본대회를 앞두고 영국이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자 국제축 구연맹(FIFA)과 대회 조직위원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영국 축구팬 집단 훌리건(Hooligan)의 난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훌리건이란 원래 건달 깡패를 뜻하는 영어로 런던에 살고 있던 건달인 한 아일랜드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85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렸던 유럽챔피언즈컵 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 유벤투스(이탈 리아)와 리버풀(영국)의 경기에서 양쪽 응원단끼리 충돌, 39명의 사망자 를 낸 이래 특히 악질적인 훌리건은 온세계로부터 비난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훌리건은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거리의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고 가게의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 온갖 행패를 다 부린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대회 에서는 이 훌리건 봉쇄작전 수립이 대회 조직위원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 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월드컵 경비에 동원한 4만5천명의 경찰병력 가운 데 3천5백∼5천명에게는 훌리건을 감시하도록 임무를 주었고, 조금이라도 난동을 부리면 최루탄을 서슴없이 쏘아대고 닥치는대로 구속했다.

또 전통적으로 과열되기 쉬운 영국-네덜란드전은 아예 살다니아섬의 칼리 아리에서 치러 두 나라 응원단을 섬에 가두는 작전까지 썼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영국팬들을 단속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었으나 “엄한 단속 때문에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영국 축구팬들이 난폭해진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미국 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축구 폭동으로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 80%가 육 체노동자이거나 실업자였다는 보고가 있다”고 영국의 경제난이 훌리건의 난동과 관련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실업, 빈곤만으로 훌리건의 난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1만5천명이나 되는 리버 풀의 청년들이 돈을 들여 브뤼셀까지 가서 대낮부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는 경제적 여유로 보아서도 실업과 빈곤이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다”며 < 타임>의 견해에 의문을 표시했다.


중세의 볼차기 놀이를 하고 싶나

이에 비해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사회계급이나 경제상황이 난동의 이 유는 아니고 문제는 내셔널리즘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국제경기를 내셔널 리즘 고양의 마당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또 “전쟁이 일어나 지 않게 되자 스포츠 선수는 특히 국제경기에서 전사로서의 구실을 대행 하고 있다. 팬들이 경기를 전쟁으로 여기고 선수에게 지나치게 감정을 옮 기는 일이 난동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의 고토우 다케오는 그의 저서 <사커(축구)의 세기>에서 이렇게 썼다 . “훌리건의 행동양식은 거칠고 거친 중세축구의 행동양식을 그대로 따 르고 있다. 중세의 축구란 육체적 접촉, 그리고 명문화된 룰도 없는 싸움 이다. 훌리건들은 아마도 중세의 볼차기 놀이 잔치를 체험하고 싶은 것일 게다. 그들은 현대의 복지사회에서는 완전히 상실해버린 커뮤니티 구성원 끼리의 육체적 접촉을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나아가 상대팀 응원단, 상 대팀 나라의 경찰관이나 군대와 실전을 벌여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면 훌리건의 난동은 사회에 대한 불만, 내셔널리즘, 투쟁본능 등이 복합 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고두현/ 스포츠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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