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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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액주주를 대표한 참여연대의 소송으로 이재용씨가 삼성전자 사모 전환사채를 전환한 주식은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까지 장내 시장에서 거래를 할 수 없게 됐 다. )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29)씨의 삼성전자 사모전환사채 (私募CB) 인수를 둘러싼 삼성과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 사이의 법적공방을 두고 세간에서 하는 말이다.
수원지법 민사합의30부(재판장 이흥복 부장판사)는 지난 9월30일 참여연 대가 이재용씨와 삼성물산,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CB 처분금지 가처분 신 청을 받아들여 이씨 등이 갖고 있는 CB의 주식전환, 양도 등 일체의 처분 행위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윗’이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그러 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법원 가처분 결정 하루전에 주식 전환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기 하루 전인 29일 이씨와 삼성물산이 이미 갖고 있 는 삼성전자 CB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법원의 결정이 아무런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 참여연대는 “삼성이 막강한 로비력으로 가처 분 결정 내용을 미리 알아내 사법부를 무시하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질 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삼성은 “CB를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청 구기간이 발행일로부터 6개월 뒤로 돼 있어 9월25일부터는 언제든지 주식 전환이 가능했다”면서 “29일의 주식전환도 법원에 미리 통보하고 한 일 ”이라고 일축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재판부. 애초 9월26일로 예정 했던 가처분 결정을 연기한 장본인이 재판부였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삼 성에 유감의 뜻을 밝혔으나 이미 흘러간 물이었다. 삼성의 입가에는 회심 의 미소가 어렸다.
소송의 발단은 지난 3월24일 삼성전자가 6백억원어치의 사모CB를 발행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사모CB 가운데 4백50억원어치는 이재 용씨에게, 나머지 1백50억원어치는 삼성물산에 배정했다. 즉각, 일반인을 청약자로 하는 공모와는 달리 CB 인수자를 발행회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사모CB의 특성을 이용해 이 회장이 삼성그룹의 지배권(또는 경영권) 을 아들인 이씨에게 승계시키려 한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또 CB의 전환가 격을 주당 5만원으로 낮게 책정해 엄청난 불로소득을 이씨와 삼성물산에 넘겨주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이를 토대로 6월24일 “삼성전 자의 사모CB 발행이 증여세 부담없이 삼성그룹을 이씨에게 승계시키려는 탈법적 목적을 위한 것이고, 삼성전자 소액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쳤다”면 서 삼성전자의 소액주주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소송 신청인으로 해서 C B발행 무효청구소송과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삼성은 이재용씨에 대한 삼성전자 사모CB 배정이 3세 체제를 대비한 사전 상속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사실 삼성전자 사 모CB건은 지난 95년 말부터 본격화한 ‘이재용 사전상속 및 절세작전’이 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다(<한겨레21> 154호 참조). 그러나 삼 성은 삼성전자의 CB발행이 회사정관 및 관련 법규에 위배되지 않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증권감독원이 CB발행 을 신고수리해 준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증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삼성의 주장은 이번 가처분 결정으로 타격을 받게 됐다. 법 원은 가처분 결정문에서 “CB발행이 적법 절차를 밟았더라도 대주주의 이 익을 위해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 위법한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거래소의 신주 상장 거부로 반전
법원결정 전에 주식으로 전환하는 기습작전을 성공시킨 삼성의 미소도 오 래가지 못했다. 10월1일 증권거래소에 CB로 전환한 신주의 상장을 신청했 지만 거부당한 것이다. 증권거래소는 신주발행 효력과 관련해 소송의 분 쟁이 발생한 경우는 상장을 유예할 수 있다는 상장규정을 들어 유보 조처 를 내렸다. 참여연대도 발빠르게 대응했다. 지난 10월7일 이씨와 삼성물 산이 갖고 있는 주식의 상장을 유보시켜 달라는 의견서를 거래소에 정식 제출한 데 이어 수원지법에 이씨 등을 상대로 다시 주식 처분금지 및 상 장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8일에는 CB발행 무효청구를 신주발행 무효청 구로 변경해 제출했다.
주식의 거래소 상장은 증시에서 주식을 사고팔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 전절차다. 삼성은 재용씨 등이 CB를 주식으로 바꾸면서 실물주권을 받아 두었기 때문에 장외에서 사고파는 것은 가능하다며 여유를 보이지만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내거래의 길은 일단 차단됐다. 삼성의 한 임원 은 “재용씨와 삼성물산의 상장신청은 참여연대가 법원에 정식으로 상장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하기 6일 전에 이루어졌는데 거래소가 눈치를 보 다가 유예시켰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삼성도 역습을 노리고 있다. 재정능력이 별로 없는 참여연대로 하여금 공탁금을 걸도록 해 소송진행에 부담을 느끼도록 하는 작전을 들 고 나온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장 교수와 참여연대가 근거없이 사적재산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문제가 된 CB발행 총액 6백억원의 1/10 정도를 공탁금으로 내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는 보증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한도가 6천만원 정도여서 공탁금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법원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 공탁금으로 재역습 검토
참성과 참여연대의 법적공방은 앞으로 진행될 신주발행 무효청구 결과로 최종 판가름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소수 오너들의 절대적인 지배력 아래에서 경영되고 있는 우리기업 풍토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법원이 가처분 결정문에서 "소액주주가 회사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경영진의 판단에 대해 소송의 방법으로 다투는 사례에 대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음미해 볼 만하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