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물산’은 ‘전자’에 넘겼다

이재용씨와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사모전환사채(사모CB) 인수를 둘러싸고 법정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물산도 비슷한 시기에 거액의 사모 CB를 발행한 뒤 삼성전자에 변칙적으로 넘긴 사실이 드러나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그룹과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3월28일 사모CB 3백억 원어치를 발행해 전액 동양종합금융에 인수시켰다. 그러나 삼성물산 CB는 바로 다음달인 4월에 전액 삼성전자가 사갔다. 동양종금을 사이에 끼워넣 은 것은 세간의 눈을 따돌리기 위한 위장술이었고, 결국은 삼성물산의 CB 를 삼성전자가 전량 인수한 셈이다. 이런 위장거래는 단순히 자금조달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 하는 방식이라는 게 금 융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삼성물산의 CB발행은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전자 CB가 발행되고 나서 불과 4일 뒤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처음부터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의 CB발행이 한그림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추정을 가 능케한다.

증권계에서는 삼성이 삼성물산의 CB도 삼성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재 용씨에게 넘기려 했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꼽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당 장 4월부터 증권당국의 CB발행 규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재용씨가 CB 인 수자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임시방편으로 삼성전자가 인수해 보관하기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삼성물산 CB를 6개월 가까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 CB발행으로 사회적 물의가 빚어져 세 간의 이목이 집중되자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용씨가 삼성물산 주식을 확보해야 할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삼성 그룹의 모기업인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 지배의 열쇠 구실을 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 주식 4.1%를 비롯해 삼성항공 8.5%, 호텔신라 2 .2%, 제일합섬 2.2%(이상 지난해 말 기준) 등 삼성 주력기업의 주식을 상 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CB의 전환가격이 주당 9천원이어서 3 백억원어치를 전량 주식으로 전환하면 삼성물산 주식 3백33만3천여주(지 분율 4.73%)를 보유하게 된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2.2%의 두배를 넘는 덩치다.

두번째로는 삼성건설과의 합병 이후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삼성물산을 지 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 CB를 모두 재용씨에게 넘기 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보고 삼성물산을 들러리로 내세우면서, 물 산에 CB 매입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CB 1백50억 원어치를 주당 5만원씩에 전량 주식으로 전환해 현재 30만주를 확보하고 있는데,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6만원을 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되팔면 가 만히 앉아 30억원 이상의 차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삼성의 한 임원도 “현재 삼성물산의 주가가 1만원을 밑돌고 있기 때문에 재용씨가 지분을 확보하려면 굳이 CB를 발행할 필요없이 장내에서 주식을 사들이면 된다” 면서 “삼성전자가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 CB를 재용씨가 인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임원도 “삼성전자가 보유중인 삼성물산 CB는 곧 금융기관에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결국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미 래의 그룹 총수인 재용씨에게로 계열사 지배권 상속을 위한 편법거래에 동원됐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또 삼성물산도 삼성전자와 마찬 가지로 CB발행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소액주주들과의 법적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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