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독자주장


‘과학영재’는 짓밟지 말라

얼마전의 특수목적고 학생들의 집단 자퇴서 제출 사건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나 역시 과학고등학교를 마쳤기에 그 문제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 우리나라의 사회문제는 잘못된 교육풍토에서 비롯되기에 방관할 수 없 다는 생각이다.

과학고는 진정한 과학 영재를 길러낼 수 있는 좋은 시스템으로 운영돼 왔 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가져왔던 그 확신과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과기대 또한 훌륭한 시설과 교수진을 확보해 연구하고 싶 어하는 학생들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재 의 모습에 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숨기기 어렵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 이 모든 문제들이 시작된 것일까. 무엇보다 과학 고와 과기대의 설립 취지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것은 과학고가 무리하게 정원을 늘리고 있다는 사실과 과학고·과기대의 새로운 입시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학고는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 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학생들이 지원해야 마땅하다. 하 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과학고는 특수목적고이니까 대학에 들어가기 쉬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입시제 도가 중학교 내신 중심으로 바뀌어 단지 내신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지원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과학고가 ‘과학’고등학교 라는 사실은 뒷전에 밀려난 것이다.

과학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과학자를 꿈꾸며 입학했다고 하더라도 문 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과학고 재학중에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이 있 음을 감안하더라도 과기대는 지원자의 3분의 1 정도만 수용할 뿐이다. 1 천여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과기대를 희망하든 그렇지 않든 일반대로 진학 해야 하기에 ‘비교 내신’ 운운하는 것이다. 과학고 정원을 줄이든지 과 기대 정원을 늘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기대의 정원을 늘리 는 것은 양질의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일이다.

과학고·과기대 입시제도가 특수목적고의 성격을 잃어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중학교 내신으로 과학고에 들어가고, 고교내신과 토플·면접으로 과기대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영어 잘하고 말주변 좋으 면 자질과 관심이 부족할지라도 과학영재로 평가받아 과학도로 길러질 수 있다. 아무리 과학적인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능을 평가받을 장치 가 없는 것이다. 현재 과기대생 가운데는 중학교 내신성적이 좋지 않았지 만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으며 좋은 성적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현재 입시제도의 문제를 보여주는 경우라 하겠다.

과학고는 대학입시 학원이 아니며 과기대는 결코 취업준비 학원이 아니다 . 과학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문이 열려 꿈과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마땅하다. 이제 막 움트는 과학의 미래에 찬 물을 끼얹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지유나/ 대전시 유성구 구서동 373-1 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대학


텔레비전 토론회는 정당하다

최근 텔레비전 토론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비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언 론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토론회의 남발로 전파낭비를 초래하고 말만 잘하 는 탤런트 같은 정치인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면 수긍이 가는 지 적이지만 긍정적인 측면을 외면한 중대한 착각이라는 생각이다.

21세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치르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어느 때보다도 중 요하다. 그래서 유권자는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후보를 평가해야 하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텔레비전 토론회는 유권자의 정치참여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전파낭비라는 지적은 단순한 경제논리일 뿐이다. 또한 토론회가 공정성을 의심받는 것은 선거국면의 오류를 미리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 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뢰와 능력있는 대통령을 뽑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더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각당의 후보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출되었다고 본다 . 국민들 또한 후보들을 여러 형식으로 지지하고 있다. 어쩌면 다음 대통 령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탤런트’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 각국이 장벽없는 무역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역 량이 필요하다. 어쩌면 다음 대통령은 세계를 누비는 ‘세일즈 대통령’ 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다양한 능력과 재능 을 발휘한다면 유리한 일 아닌가.

언론의 구태의연한 걱정은 의미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토론회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지적해야 하겠지만 그 자체를 부정적 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편견은 버려야 할 것이다.

박봉규/ 전남 나주시 봉황면 죽석리 1구 20번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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