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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석 고양시 문예회관 관리담당

‘내 뜰을 지키고 섰는/ 외로운 솔 한 대/ 형제여,/ 이 밤에 난/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싶구나(김동명 작 ‘밤’ 일부).

공무원 생활 8년째를 맞는 채우석(34)씨는 명함을 바꿀 때마다 한 귀퉁이 에 좋아하는 시 한구절을 새겨놓는다. 자꾸 삭막해지기만 하는 세상을 조 금이라도 부드럽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명함 뿐만 아 니다. 채씨의 목소리는 유난히 크고 명랑하다. 아무리 기분이 상해 있더 라도 채씨와 마주앉아 5분만 보내면 상한 기분이 저절로 치유된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그러나 막상 채씨 자신은 산더미보다 더 큰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며 살아 간다. 문예회관 관리라는 채씨 업무 때문이다. 현재 고양시의 문예회관으 로는 70만 고양시민의 문화적 욕구를 채우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 도시가 들어서고 갑자기 인구가 늘면서 다양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지만 현 문예회관 시설로는 어려운 점이 많아요. 인구 70만이라고는 하지만 극 장도 개봉관이 한곳일 정도로 문화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구요.”

시설과 함께 인력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문예회관의 관리 업무와 공 연을 섭외하고 청소년을 위한 영화를 상영하는 일은 물론 도서관 관리하 는 일까지 온전히 채씨의 몫으로 돌아온다. 과중한 업무이지만 채씨의 표 정에는 오히려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동안 자신이 맡아왔던 여러 업무 중에서 문예회관 일이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다. 한달에 한두번씩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서울 나들이를 다니는 일도 문예회관을 맡으면서 생긴 버릇이다. 모자란 문화적 소양을 닦고 시 민이 만족할 만한 행사를 만드는 기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부족한 시설일수록 효율을 높여야 된다는 숙제도 채씨의 아이디어로 해결 했다. 좋은 영화를 접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문예회관 이용률 이 낮은 낮 시간대에도 영화를 상영한다는 계획이다. 각급 학교들로부터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도 이미 얻어놓았다. 좋은 영화를 통해 청소년들의 비행을 방지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채씨 의 욕심이다.

창간호부터 열렬한 <한겨레21>의 독자인 채씨는 문예회관 일을 맡으면서 <한겨레21>를 읽어가는 순서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정치나 경제면에 시선 이 많이 갔지만 요즘은 아무래도 문화면에 관심을 많이 둔다. 필요한 정 보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 예전에는 없었던 불만도 생겼다. 아무래도 문화면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정치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삶의 질을 높이는 일 은 문화적 활동을 통해서 가능한 것 아닐까요. 문화면을 좀더 늘려야하구 요.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분야에까지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돼 요. 진보적인 것에만 매달릴 경우 다양한 세상에 대해 편견을 갖게 할 수 도 있거든요.”

전문가 뺨치는 논리를 전개하는 채씨는 또한 만학도이기도 하다. 늦었다 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대로 뒤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러 나 전공은 문화와는 거리가 먼 사회학. 국민대학교 과학사회학과 2학년 동안 빠지지 않고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학업에도 열심인 채씨의 꿈은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는 것.

“이기심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불신만이 가득하죠. 이런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통일 뿐입니다. 한걸음씩 물러나는 양보심을 발휘한다면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채씨가 꿈을 이루어 가는 방법이다.

윤승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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