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사람농사가 먼저입니다”

사람농사를 짓는 농장이 있다.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율극리 ‘학습농장 ’이 그곳이다. 백규헌(51)씨는 학습농장의 ‘교장선생님’이다. 백씨는 올 봄 자신의 3천여평 고구마밭을 학습농장으로 꾸몄다. 그리고 분당과 성남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 초등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고구마씨를 뿌리도록 했다.

봄에 뿌린 씨앗이 자라 이제 결실의 계절을 맞았다. 씨앗을 심었던 초등 학생들은 지난 9월 말부터 다시 농장을 찾아와 결실의 기쁨을 맛보고 있 다. 고구마를 캐는 자리에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참여한다. 도시락까 지 싸와 2시간 동안 일해 캐낸 고구마는 직접 가져가게 한다. 3천여평에 서 나는 고구마는 모두 4천여명이 나눠갖게 된다. 고구마밭에는 몇 이랑 마다 ‘○○초등학교 ㅇ학년ㅇ반’하는 식으로 팻말이 붙어 있다.

“세상의 수많은 학원에다 농사를 가르치는 또다른 학원 하나를 더 만들 어 아이들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는 백씨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뛰 어놀고 자연과 더불어 즐기고 느끼면 그만이다”며 웃는다. “협동보다 경쟁을 먼저 가르치는 삭막한 세상에서 이곳을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 치는 소중한 장소로 일구겠다”는 게 백씨의 포부다.

여주군농민회 회장이기도 한 백씨는 “우리 것과 우리 민족에 대한 긍지 와 자부심이 있는 아이가 창의성도 있고 진정한 열정도 가질 수 있다”며 “독일이나 일본에만 대를 잇는 전문가들이 있다고 믿는 아이들이 우리에 게도 수백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고 덧붙인다.

“21세기는 뿌리깊은 민족의 역사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한 시대”라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백씨는 학습농장의 작물을 땅콩, 무, 배추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연락처: 0337-83-0770).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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