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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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화계에서는 난국 타개책으로 기획영화나 저예산 영화들을 제 작한다. <억수탕>도 그중 하나다. <영창이야기>로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상 을 수상했던 곽경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억수탕>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공간의 적절한 활용으로 저예산 영화의 모범을 보여준다. 벌거벗고 마주 할 수 있는 곳, 대중목욕탕은 우리의 정서가 물씬 밴 곳이다. 사춘기의 호기심과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온기. 연례행사처럼 온가족이 목욕탕에 가고, 탈의실 한켠에서 짜장면을 먹는 모습. 지금은 사라져가는 풍경이지 만 이곳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영화감독을 꿈꾸나 만화 방에서 소일하는 완기, 병원환자들을 피해 이곳을 찾은 비뇨기과 의사, 그리고 성병에 걸린 스님. 이들은 서로의 등을 밀어주면서 한통속이 되어 술취해 들어온 건달과 한판승부를 벌인다.
누드 사진작가인 정미는 꿈 속에 본 목욕탕을 찾아오고, 남편의 선거유세 를 위해 들어온 중년여자가 때를 밀어주며 온갖 수다를 떤다. 철수네 가 족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아웅다웅하며 서로의 때를 밀어주고 있다. 이 때 글래머인 러시아 여자가 등장한다. 정미는 그녀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 고 조른다. 그때 목욕탕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한다. 때마침 한 남자가 여 장을 하고 그들의 몸을 훔쳐보는 중이었다. 그는 도둑으로 오인받는다. 사건이 해결된 뒤 정미는 목욕탕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지켜본다. 이는 작 가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녀는 온기 넘치는 목욕탕을 보고 난 뒤 자신이 찍은 누드사진들을 버린다. 진실된 모습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는 자신의 분신을 통해 목욕탕이라는 요지경 세계를 바라본다 . 그렇다고 해서 기존 영화들처럼 관음주의적인 시선은 아니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기 위해 수평으로 이동하는 화면기법은 이들의 모습을 담담 히 지켜보게 만든다. 또한 목욕탕이라는 공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줌 으로써 상업적 에로티시즘보다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는 것 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때로는 지나치게 에피소드에 집착했다는 점이 다. 성기가 큰 남자를 등장시키는 장면이나 여장남자의 등장은 너무 흥미 에 집착한 것이 아닐까. 또한 사진작가 정미가 억수탕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가 처한 상황을 제시하는 장면들은 너무나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억 수탕>은 단순한 상업영화가 아니라 젊은 발언이 드러나 있는 미완의 작품 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