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문화

한국문학은 당당한가

(사진/노벨문학상은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탈리아의 작가 다리오 포(왼쪽)는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수상했다.)

97년 노벨문학상은 이탈리아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배우인 다리오 포(71) 에게 돌아갔다. 그는 40년 넘게 이탈리아 연극계를 주도한 혁신인물로 무 대삽화미술가, 사회선동가, 무언극배우로도 활약했다. 대표작은 <어느 무 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1970), <돈내지 맙시다>(1974) 등. 그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최고의 명예와 함께 7백50만크로나(1백만달러)의 상 금을 받게 된다.


비난 여론 거센 최고의 문학상

매년 10월 스톡홀름으로부터의 노벨문학상 수상발표는 으레 남의 집 잔치 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우린 언제나 그 먼나라를 앙망한다. 노벨문학상 은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전세계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문학 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수상국가는 문화적 자부심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수상작가의 작품은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 출판된다. 노벨문 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정원 18명)이 전세계 문학단체나 개인에게 추천의 뢰장을 보내 연말까지 후보를 접수한 뒤, 이듬해 3월까지 1백50명 가량의 1차 명단을 작성한다. 이어 2차로 15명, 마지막으로 5명 정도로 후보를 좁힌 뒤 최종수상자를 결정한다. 지금까지의 후보자들을 돌아보면,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한 톨스토이, 토머스 하디, 에밀 졸라, 헨리크 입센 등 대문호도 적지 않다. 체코의 밀란 쿤데라, 독일의 귄터 그라스, 영국의 살만 루시디,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고,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 식민지 출신 영국작가 VS네이폴,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중국태생 망명시인 페이타오 등은 살아있는 만년후보들이다.

노벨문학상은 평화상에 이어 일반대중들이 수상자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분야다. 뒷말이 따르게 마련이다. 1901년 1회 수상 때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에밀 졸라였다. 그러나 노벨이 생전에 졸라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던 위원들이 푸리우돔에게 상을 줬다. 그러자 스웨덴 작가들은 또 “왜 톨스토이에게 수상하지 않았느냐”고 일어나기도 했다. 버나드 쇼는 1925년 상을 받았을 때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은 용서 할 수 있으나 노벨문학상까지 만든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꼬집었다. 그 는 상을 받긴 했지만, 상금은 거절했다. 상을 거부한 사르트르도 보부아 르에게 말하기를 “도대체 누가 감히 칸트며, 데카르트 또는 괴테에게 상 을 줄 권리를 갖고 있느냐. 문학에 서열이나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것도 나는 부정한다”고 말했다.

문학평가에 대한 근원적 어려움 외에 가장 비판이 되고 있는 부분은 노벨 문학상이 서구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수상자 94명 중 구미 문 학인들이 80명으로 85%다. 국가별로 보면, 프랑스(12명)가 최다수상국이 고, 그 뒤를 미국(10명), 영국, 독일(이상 8명) 등이다. 제3세계에서는 스페인어권인 중남미가 통틀어 6명, 아시아 4명(일본2, 인도1, 이스라엘1 ), 아프리카 3명이 고작이다. 스웨덴 한림원도 이런 비판을 의식, 80년대 이후부터는 제3세계권 안배에도 무척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컴플렉스 시달려 수상 전략만 난무

우리도 80년 이래 한국문학 번역사업을 추진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현실 화해보려 애쓰기도 했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됐던 국내작가는 김은국(69 년), 김지하(75년), 김동리(81년), 서정주(90, 94, 95년), 최인훈(92년), 한말숙(93년) 등이다. 한국의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는 심하다. ‘우린 왜 노벨문학상을 못 받느냐’는 치기어린 투정부터 출발, ‘노벨상 타기’ 전략도 나름대로 구상, ‘홍보가 부족하다’, ‘한 작가만 집중적으로 밀 어야 한다’, ‘스톡홀름에 한국문화관을 세워야 한다’, ‘노벨문학상도 로비다’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우리 문학과 문화 전반에 대한 토대를 갖추기보단, 감 따는 데만 정신이 팔려 가냘픈 사다리를 곧추세우 는 데 온신경을 집중했다.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입만 벌리고 “왜 안 떨어지지” 타령만 몇번 하다가, 요즘엔 아예 “그깟 노벨문학상 ”식의 ‘신 포도’를 쳐다보는 여우가 돼버렸다.

(사진/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라는 문화적 자존심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 스웨덴어서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 모습. )

그런데 폴란드가 노벨문학상을 4번이나 받은 것은 하나의 시사점이 된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낀 폴란드는 약소국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나라다. 비록 유럽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긴 하나, 잇단 수상비결 은 문화인프라에 있다. 지방마다 수십년 전통의 문예지들이 있고, 이 문 예지들을 세계 각지의 유명 도서관과 대학이 구입해갈 정도로 그 수준이 상당하다. 세계 학계에서 공인받은 문예지수도 러시아를 능가한다. 그리 고 국립 바르샤바대학 국문과에서는 번역을 통해 세계 모든 지역의 문학 이 연구되고 있다.

한국문학은 이처럼 지금까지 제대로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학을 소개한 적 도 없고, 외국인 번역전문가를 양성한 적도 없으면서 한국에 앉아서 노벨 문학상 타령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노벨문학상이 생존 작가에게만 시 상한다는 이유로 성급한 번역과 생존 작가 작품에만 집착하는 결과를 낳 았다. 서강대 불문과 최윤 교수는 “노벨문학상 논의에 앞서 문학풍토와 우리 문학의 중심적 가치를 구축해야 하는데 지금의 문학흐름은 상업주의 로 흐르고 있다”면서 “노벨문학상은 문학작품의 깊이와 완성도뿐 아니 라 독자에 이르기까지 그 양과 질이 일정수준에 오를 때, 부수적으로 따 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논의에서 또하나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노벨문학상 수 상자들 대부분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끝없는 애정, 강한 신념 등으로 삶 자체가 노벨상감이었다는 점이다. 러셀은 수학과 철 학의 역사에서 이룬 학문혁명뿐 아니라, 1차대전 당시 평화운동, 이어 원 자폭탄 반대 운동에 나섰고, 쿠바위기 때는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에게 자 제를 호소하는 편지를 썼고, 반핵캠페인으로 나이 89세에 감옥생활을 하 기도 했다. 솔제니친은 소련의 독재권력체제에 항의, 20여년 동안 강제망 명 생활을 했다. 칠레의 민중시인 네루다는 칠레의 군부쿠데타로 감금돼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의 인간됨은 우편배달부 소년에게 보여준 그의 애 정이 잘 나타나 있는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지배층의 부패와 폭력을 강도높게 비판한 르포집이 문제가 돼, 70세의 나이에 또다시 조국 콜롬비아를 떠났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필요하다

30년 이상 민주화 투쟁을 벌인 월 소잉카도 국가반역 혐의로 나이지리아 군사정권에 쫓기는 신세다.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헤이니도 북아일랜드 분쟁에서 한 사람의 문학자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 어떤 몫을 했느냐 하는 것이 선발의 비중있는 척도가 되었다. 올해 수상자인 다리오 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과연 노벨문학상에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있 는지 분수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최근 우리 문학계에는 사회현실과 관련된 작품에 대해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지가 꽤 됐다. 그러다 보니, 정치성(또는 참여성)을 철저히 탈색시킨 감각적 작품들만 판을 친다. 그 게 순수문학인지, 아니면 경박단소한 우리 사회현실을 더욱 철저히 반영 한 것인지, 그래야만 포스트모더니즘이 되는 건지. 그리고 또하나, 투옥 작가가 있는 나라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중국작가 페이타오는 유력한 수상후보로 꼽혔으나 천안문사태 이후 수상권에서 멀 어졌다. 대한민국 정부가 감히 노벨문학상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떨어지지 않는 ‘노벨문학상’이 아니라, 어 쩌다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아니라, 척박한 ‘광야’에 쟁기질이라도 한번 더 하는 것이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