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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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금속활자 원조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손보기(왼쪽) 교수와 판지싱(가운데) 연구원.)
중국을 떠받치고 있는 고대문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세계 최 초의 인쇄술 발명국을 놓고 벌이는 한국과 중국의 ‘문명전쟁’이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이 통일신라 시대에 인쇄한 ‘무구정광대다리 니경’의 저작권을 내세운 데 이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인 한국 의 명예에 흠집을 내기 위해 혈안인 것이다.
인류 기록유산의 국제적 보호와 협력을 위해 유네스코에서 마련한 ‘동서 고인쇄문화 심포지엄’에서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 연구소 판지싱 연구원 은 “목판인쇄는 물론 비금속·금속활자 등 모든 분야의 인쇄술에서 중국 이 앞선다”며 원나라의 구리활자본 ‘어시책’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인쇄술은 일반적으로 목판인쇄에서 비금속활자로 다시 금속활자의 3단계 발달법칙이 적용되는데 목판인쇄의 원조국인 중국에서 금속활자도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 낙양에서 인쇄돼 신라로 옮겨갔다는 일방적인 논리를 전제로 한 주장이다.
판 연구원은 원나라 때(1298년) 왕정이 기록한 조활자인서법(造活字印書 法)에서 중국 금속활자인쇄술의 기원을 찾는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근세(近世)에 주석으로 활자가 기록되었다”는 내용이다. 판 연구원은 “근세가 원보다 앞선 왕조인 12∼13세기의 남송을 가리키며, 원나라 시 대에 중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더욱 발달해 진사들이 쓴 13편의 논문이 수록된 어시책이 1341∼45년간에 동활자로 인쇄되어 남아있다”고 말한다 .
한국으로선 객관적 방법으로 확인되지 않은 금속활자본을 받아들이기 어 렵다는 반응이다.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천혜봉 명예교수는 “근세라는 시기를 남송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의적 판단일 뿐이다. 북송이나 원초로 도 해석이 가능하다. 막연한 인쇄술 발달의 보편법칙에 따르며 억지주장 을 펴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단국대 박물관장 손보기 교수 역시 다르지 않다. “중국이 어시책을 가지고 불조직지심체요절보다 30년 앞선 것이라 주장하지만 한국에서 금속활자 인쇄는 훨씬 앞선 시기에 시작되었다. 12 세기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고려의 ‘복활자’가 현존하며 활자인쇄본인 ‘남명천송증도가’는 1232년 목판으로 재판각돼 나온 것으로 보아 그보 다 앞선 시기에 금속활자 문화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인쇄 물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는 ‘불조직지심체요절’을 표 적으로 삼아 ‘금속활자 원조론’을 펴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목판 인쇄술 원조 논쟁의 주도권을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국 은 올해 초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으로 국제적인 공인을 받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목판인쇄 발명국을 놓고 한국에 ‘문명전쟁’을 선포하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당 나라 측천무후 재위시 만든 글씨체인 ‘무주제자’(武周制字)가 사용된 점 등을 들어 ‘신라 수입설’을 내세웠지만 한국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 다. 한국은 신라가 695년 측천무후의 역법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고, 종이원료가 삼나무인 중국과 달리 닥나무를 사용한 점 등을 내세워 중국 기원설을 부인했다. 중국으로선 목판인쇄술의 원조를 놓고 양국이 첨예하 게 맞선 가운데 열리는 이번 심포지엄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서 목판 인쇄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회피했다. 양국이 먼저 현존하는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는 게 순서라는 식의 답변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다만 일본 이 770년에 만든 ‘백만개의 소형 목조탑’ 안에서 발견한 불경 인쇄본을 들어 한국과 중국간에 이루어지는 인쇄술 논쟁에 참여하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중국은 고대문화 종주국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국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 일본은 불경 연구를 통해 인쇄술 발달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양국의 도전에 수세적인 방어를 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과 대책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과 학사학, 서지학, 고고학 등 관련학계의 공동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실 정이다. 문화유산의 해에 자칫 선조들의 위대한 발명품의 지위를 격하시 킬 위기로까지 몰려있는 것이다.
김수병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