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꽃집아저씨 임성택씨

임성택(42)은 꽃을 파는 장사꾼이다. 꽃장사 경력이 18년이다. 노점상으 로 6년, 대학 근처 가건물에서 5년, 그리고 그 옆에 가게를 내어 5년. 화 류계(?) 인생이라 부를 만도 하다. 그 덕에 단골손님만으로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만큼 터를 닦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얼마 전 출판사를 차리고 한권에 2만8천원하는 큼지막한 책을 냈다. 그것도 세권을 한 묶음으로. 주변에서 기를 쓰고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리곤 책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연구실까지 차렸다. 그랬더니 ‘ 꽃을 포장하는 남자’로 제법 유명인사가 되고 말았다.


꽃을 깔고 앉아야 했던 노점상 시절

이전까지 그는 ‘예술 아저씨’로 통했다. 사실 늘 색바랜 군복 재킷을 걸치고 머리칼이 삐죽거리는 꽁지머리를 한 꼴이 예술가처럼 보이긴 한다 . 그러나 그보다는 그가 파는 꽃이 좀 특이했다. 꽃이야 여느 가게에서 파는 꽃과 다를 게 없지만 일단 그의 손을 거치면 한층 더 때깔이 났다. 형형색색의 테이프나 셀로판지, 닥종이, 마, 리본 따위로 꽃을 곱게 꾸며 주기 때문이다. 기름종이나 철조망, 심지어는 신문지처럼 꽃과 전혀 어울 릴 것같지 않은 소재들로 꽃을 감싸주기도 한다. 이른바 ‘플라워 래핑’ 이라는 기법이다. 그는 상술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왜 그처럼 꽃을 정성스레 포장하느냐고? 그가 보기에 “그건 꽃을 파는 이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의 꽃집에선 이따금 호통소리가 들린다. 주 인이 손님을 나무라는 소리다. 손님이 슈퍼마켓에서 물건 고르듯 꽃을 함 부로 만지는 걸 못참는 그의 성미 탓이다. 그가 정성스레 포장한 꽃다발 을 거칠게 다루거나 손장난질을 치는 것도 금물이다. 게다가 “내 돈내고 산 꽃인데 웬 참견이냐”고 따지고들면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일쑤다. 그 럴 때마다 고생하는 건 아내다. 남편과 손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쩔 쩔맨다. 그는 그런 아내 역시 못마땅하다. 꽃장사가 꽃 편을 들지 않다니 .

그의 꽃 편들기는 아무래도 천성이지 싶다. 도자기를 굽던 아버지에게 떠 밀려 도예과에 들어갔지만 도자기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실습시간에 손수 꽃병을 빚고도 그보다는 거기에 꽂힌 꽃이 좋았다고 하니 어쩌랴. 군대 시절 행군을 하거나 진지를 파면서도 한송이 들풀에 마음을 빼앗겼 다. 집안이 망한 뒤 리어카를 끌고 노점상으로 나섰을 때도 홀린듯 택한 게 꽃이었다. 지금도 주말이면 산행을 떠나 이름모를 야생화를 보고 오는 게 낙이다.

그러나 장사는 꽃처럼 곱지는 않았다. 새벽에 꽃을 떼오면 리어카 주변에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곤 했다. 아내는 길바닥에 마구 흐트러진 꽃을 깔 고앉아 눈물을 찔끔거리고. 철거반이 다녀간 뒤의 노점은 그렇게 을씨년 스러웠다. 가건물을 짓고 판을 벌였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침 올림 픽한다고 철거바람이 불어 하루가 멀다하고 철거반원들과 실랑이를 벌여 야 했다. 하루는 그 등쌀에 견디다 못해 한밤중에 소주병을 들고 철거반 장집에 쳐들어갔다. 팬티 차림으로 깨어나 앉은 반장과 술잔을 돌리면서 밤을 샜다. 다음날 철거반이 거리에 나타났지만 그의 가게는 살아남았다.

그는 “손님이 꽃을 사는 것은 꽃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사고싶어서”라 고 믿는다. 애인이나 가족, 또는 친구가 기뻐하는 걸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꽃의 쓰임에 따라 포장법이 달라진다. 시상대에 선 친구에게 선사 하는 꽃은 아이를 안듯이 가슴에 푹 담기도록 푸짐하고 화사하게 포장한 다. 신부용 부케는 사방에서 꽃송이를 볼 수 있도록 아담하게 꾸민다. 멀 리 떨어져 있는 애인에게 보내는 꽃은 꼭 상자에 담아준다. 상자를 여는 순간 꽃이 보이도록 해 놀라움과 기쁨을 함께 선물하는 것이다.


꽃이여, 나의 사랑이여

(사진/그는 사람을 대하듯 꽃을 정성스레 다룬다. 그래서 더더욱 손님들이 꽃을 함부로 만지는 걸 못참는다. )

처음 포장법을 개발할 때는 책도 학교도 없었다. 꽃을 선물한다는 것 자 체가 낯선 시절이었으니 포장까지 신경쓰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시내 대형서점에 일부러 주문을 해도 서너주 만에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대부 분 유럽이나 일본에서 나온 책들이었다. 쓸만한 포장재도 별로 없었다. 요즘이야 온갖 포장재가 넘치지만 80년대만 해도 셀로판지 따위가 고작이 었다. 색깔이 다양하고 투명해 꽃 포장재로는 쓸만했지만 딱히 기술이 없 었다. 밤새 꽃과 셀로판지를 조물락거리며 아이디어를 짰다. 그렇게 짜낸 생각들이 노트에 빽빽하다.

남자가 꽃에 미쳐 사니 주변에서 이상하게 본다. 몇해 전 겨울 꽃집 창밖 으로 엿들은 노부부의 말다툼은 지금 생각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아들 졸업식에 올라온 듯한 노부부는 꽃집에 들어서려다 말고 길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욱 컸다. 들어본즉 남자가 꽃집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할머니는 주인이 남자라 아무래도 꽃을 잘 다루지 못할 테니 다른 데로 가자고 할아버지를 윽박질렀다.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허튼 꽃을 주겠느냐”는 완강한 거부였다. 꽃을 다 듬다말고 피식 웃고 말았다.

꽃집에서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본다. 어느 봄날 여자 손님에게 꽃을 포장해주고 있을 때였다. 가게에 들어선 남학생이 “여자친구 작품발표회 에 갈 건데 어떤 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별 생각없이 여자 손님 에게 꽃을 좀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여자는 웃으며 남자에게 장미를 찍어 줬다. 여자가 나가자 역시 별 생각없이 “꽃 골라준 것도 인연인데 여학 생에게 차나 한잔 사라”고 남자에게 농담을 던졌다. 남자는 그말에 홀린 듯 뛰어나갔고 창문 너머로 여자를 불러세우는 게 보였다. 그리고 4년이 란 세월이 흘렀다. 가게 앞에 스포츠카가 서더니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 며 가게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둘 사이에는 갓난아기가 있었다. 아기 이 름이 ‘백장미’라고 했다. 그날 인연으로 두 사람은 부부가 됐던 것이다 .

사실 그의 아내도 꽃이 맺어줬다. 어느 여름날 서울역 대합실에서였다.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짧은 치마에 어깨가 드러난 옷을 입고 다리를 꼬 고 앉아 머리결을 매만지는 여인 때문은 아니었다. 여인의 가슴에 안긴 특이하게 포장된 빨간 장미 꽃다발. 그는 무릎을 꿇다시피하고 꽃다발에 코를 들이밀었다. 여자는 온몸을 뒤로 젖히며 질겁했다. 순간 그의 한쪽 뺨이 화끈했다. 그때 그 여자가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

꽃은 사람 마음에 평정을 준다. 미운 감정이 든 이에겐 사랑을, 성미가 급한 이에겐 침착함을, 생활에 지친 이에겐 작은 여유를 준다. 꽃보다 아 름답게 꽃을 포장하는 것은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포장하는 것이다. 꽃장 사 임성택은 꽃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꽃을 포장하고 싶다.

사진 박승화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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