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김순경의 맛기행

‘도가니’ 먹고 찬바람 즐긴다

아침 저녁 찬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고 있다. 온 몸이 저절로 움 츠러들며 마음까지 어수선하다. 곧바로 닥쳐올 추위를 앞두고 몸을 돌보 라는 대자연의 예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조짐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어지는 자연현상이다. 야생동물들은 부랴부랴 새 털로 갈아입으며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고, 먹이를 주워 감추느라 정신이 없다. 수목들도 서서히 잎을 거두고, 가지끝에 영 양분을 저장한다.

사람이라고 느긋할 수만은 없다. 따뜻한 집과 걸칠 옷이 있다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몸안에 저장된 기본 체력이다. 우리 속담에도 ‘가을에 보신하 면 겨울이 편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 라고도 말한다. 가을에 건강의 기틀을 다져놓지 못하면 겨우내 고생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은 겨울에도 활동을 계속해야 하므로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몸의 열 량을 채워주고 탄력을 잃지 않도록 필요한 영양소들을 스스로 찾아 먹어 야 한다. 그중 중요한 것이 단백질이다. 특히 소의 무릎관절을 구성하고 다리 근육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무릎 도가니’를 푹 고아낸 ‘도가 니탕’은 이런 때 그 무엇보다 좋은 먹거리로 손꼽힌다.

도가니는 눈으로 보기에도 아교질(젤라틴) 덩어리인 투명하고 뭉글뭉글한 점액질의 단백질 덩어리다. 실제로 도가니는 지방이 거의 없고 콘드로이 친 황산과 무친이라 불리는 점액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을 비롯한 무기 질과 칼슘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도가니탕은 예로부터 남자 들에게는 강정식으로, 산후 젖이 모자라는 산모에게는 젖을 내는 약으로 사용됐고, 임금님의 수라상에까지 오른 건강식이다. 도가니는 이처럼 좋 은 영양소와 약리작용을 동시에 해낸다. 점액질의 단백질은 세포와 조직 의 원활한 합성과 상호 윤활작용, 호르몬의 생성 등 그 효능이 다양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는 골다공증을 미리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추위로 피부가 거칠어지고 관절의 움직임이 부드럽지 못할 때 도가니탕은 더없이 좋은 식품이 된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는 이름난 도가니탕집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독립문 근처 교북동의 대성집(735-4259), 종로구청 앞의 고바우집(732-4381), 충 무로 인쇄골목의 파주옥(267-6149), 서초동 법원 앞의 서초설렁탕(595-66 60), 과천 종합청사쪽의 가마솥 곰탕(503-3377) 등이 도가니탕으로 이름 난 집들이다. 그 밖에도 많다.

도가니탕이 전문은 아니지만 설렁탕과 꼬리곰탕 또는 우족탕을 전문으로 하면서 도가니탕과 도가니 수육을 같이 내는 경우, 대부분 꼬리나 우족, 또는 사골을 고아낸 진국에 도가니를 삶아 내는 것이어서 국물맛이 퍽 고 소하다. 도가니가 지닌 영양소에다 뼛국물의 칼슘과 무기질 등이 더 보태 져 맛과 영양이 한결 높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국물이 진한 탕 전문집이 라면 거기에 도가니를 넣고 끓여낸 것이므로 먹어도 괜찮다. 이처럼 집집 마다 끓이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하는 집들을 이집 저집 찾아다 니면 오히려 다양하게 도가니맛을 즐길 수도 있다.

앞으로 두달 반 정도 남은 가을에 적어도 4∼5회는 도가니를 먹을 시간이 있다. 보약을 먹는 마음으로 한달에 한두 번이라도 도가니를 먹어 놓으면 몸이 한결 부드럽고 웬만큼 추운 날에도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훨씬 수월 함을 느낄 수 있다.


고유의 맛 40년 이어온 ‘대성집’

서대문 로터리에서 독립문으로 오르다가 사직터널에서 금호터널로 넘어가 는 육교가 바라다 보이는 5백m쯤 앞, 교북동 골목 안에 있는 대성집은 도 가니탕집들 중에도 이름난 집이다. 이 집은 도가니 하나로 40여년 전통을 이어온다.

워낙에 도가니를 많이 끓여내기 때문에 그 국물이 남아돌아 아침에 내는 해장국 국물도 도가니를 삶아낸 국물에 선지와 우거지를 넣고 다시 끓여 낸다. 그래서 다른 집들이 우족이나 꼬리를 삶아낸 국물에 도가니를 말아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도가니 그 자체의 질감만큼이나 국물 이 부드럽고 단맛이 난다. 이 맛을 죽이지 않으려고 국물에 마늘을 비롯 한 양념도 일체 넣지 않고 실파 잎새를 송송 썰어 약간 얹을 뿐이다. 뼛 국물처럼 고소하고 깊은 맛은 없지만 고기에서 우러난 달고 부드러운 맛 은 입에 감치고, 목에 넘어가는 촉감 또한 다르다.

이런 이유로 도가니탕 자체의 고유한 맛을 보려면 우선 대성집을 찾는 보 는 것이 좋다. 지하철 독립문 역에 내리면 걸어서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 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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