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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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국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 긴장 탓인지 4 월 말인데도 일본 나리타 공항은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졌다. 선진적인 옻 칠 공예기법을 배우기 위해 7년 전 일본에 건너간 최귀영(34)씨에게는 모 든 게 낯설기만 했다. 예술적 기법만은 외국인에게 전수시킬 수 없다는 일본. 하지만 일본의 그런 배타적 장벽을 뚫고 볼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옻칠문화을 일으켜 보고 싶었다.
최씨는 일본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해 놓은 10만엔을 은행에 예치했다. 하 지만 장기간 일본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낮에는 옻칠 공예연구소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알아보고 저녁이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기 닦는 일을 해야만 했다.
일본에 도착한 지 10여일이 채 지나지 않아 그가 일하는 식당이 다음날 쉰다고 했다. “식당 정기휴일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 고 보니 7일간의 황금연휴였던 거예요. 그땐 일본의 문화를 도통 몰랐으 니까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다음날 아침거리를 준비 하기 위해 슈퍼에 들렀지만 휴일이라는 표시만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다 른 상점도 마찬가지였다. 은행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웬일일까? 불안한 마음으로 유일하게 문을 연 신문 가판대쪽으로 발걸음 을 옮겼다. 마흔이 조금 넘은 듯한 수수한 차림의 일본인. 어눌한 일본어 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이유를 물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황금연휴 라고 했다. 아찔했다. 주머니에는 한끼분의 빵과 우유를 살 수 있는 5백 엔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일주일을 버틸까.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이국. 최씨의 당황한 표정을 읽은 가판대 아저씨는 무슨 사정이 있 냐고 물어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다급해진 최씨는 “반드시 갚겠 으니 5천엔만 빌려줄 수 없느냐”고 부탁까지 했다.
가판대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5천엔도 아니고, 1 만엔을 빌려주겠다는 거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가판대 수입이 뻔할 텐 데도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 거리낌없이 돈을 빌려주더군요. 친절과 믿음 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제일 먼저 은행에 들러 가판대를 찾았다. 아무리 일본이 신용 사회라고 하지만 돈을 꿔준 이유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가판대 아저씨는 “예상대로 당신이 이렇게 돌려주지 않았냐”며 껄껄 웃기만 했 다. 최씨는 그 뒤 자신이 원했던 칠예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