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공룡의 발목을 붙들어 매자”

(사진/해외주둔 미군의 안전을 이유로 대인지뢰금지 협약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클린턴 미 대통령. 미국의 반대에도 이 협약은 전세계 89개 참가국의 합의로 통과됐다.)

`거대한 공룡’ 미국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다. 미국은 현재 이 유일강대국의 지위를 이용해 때로는 국제법을 이용하고, 때로는 국제법을 무시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자국 이익을 추구한다. 전세 계 어느 나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이 ‘공룡의 횡포’를 막기는 어렵다. 때문에 집단적으로 미국의 전횡을 막으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 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9월1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전세계 89개 참 가국의 합의로 통과된 대인지뢰금지협약초안이다.


지뢰금지, 한반도만 예외?

국제적십자사가 ‘인류애의 승리’라고 평가한 이 협약초안은 ‘어떤 상 황에서든 어떠한 종류의 대인지뢰도 사용을 금지한다’ 등 총 22개 조항 으로 이뤄졌다. 이 초안은 오는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서명식을 가지고 그 6개월 뒤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이 초안이 특별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 협약이 끝까지 미국이 반대하는 가운데 도출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 협약에 대해 한반도를 예외로 인정 하거나 협약이행을 9년간 유예하는 등 몇 가지 예외조항을 두자는 수정안 을 내놓았다. 그러나 참가국들은 이런 미국의 수정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대인지뢰금지협상을 주도한 캐나다의 로이드 액스워디 외무장관은 “기념 비적인 이번 협약안을 약화시킬 수 없었다”며 미국의 수정안을 거부한 참가국들의 의사를 대변했다. 때문에 이 협약은 국제사회에서 명분이 확 실한 사안에는 미국의 위세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미국에 대항하는 또다른 움직임은 지역연합의 결성이다. 대표적 사례가 유럽연합(EU)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6월 초 ‘재정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 약’을 승인함으로써 오는 99년 1월1일부터 유로라는 이름의 단일통화체 제에 들어간다. 사실상 경제통합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이제 외교 안보정책의 공동조율, 국경개방, 사법공조 등을 거치면서 미국과 비 슷한 거대 ‘유럽합중국’을 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이런 통합 움직임은 바로 미국에 맞서는 세력균형자 구실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사안은 모두 현실적으로 일정한 한계를 지니는 게 사실이다 . 개별적 협약의 경우 미국에 반대하는 동일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자국 이 해에 따라 입장이 갈릴 가능성이 더 크다. 오는 12월 초 도쿄에서 열릴 기후변화협약만 해도 그렇다. 이산화탄소 규제치를 논의할 이 회담에서는 선진국, 중진국, 개발도상국 등의 이해가 모두 엇갈려 하나의 단일한 목 소리를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또 지역연합도 유럽과 같은 특수한 경 우에 한하는 것이고, 이나마 그 자체가 또다른 패권추구세력으로 변할 위 험이 상존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유엔을 통한 미국 견제가 가장 타당성 있는 방법이라 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96년 12월 퇴임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 총장 재임 시기 유엔은 미국과 상당한 갈등을 드러냈다. 이집트 출신의 외교관으로 지난 92년 유엔 사무총장에 오른 갈리는 취임 직후부터 유엔 의 위상 강화에 힘써왔다. 그는 재임기간중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평화 유지군을 파병하거나 국제회의들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선전장이 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유엔이 어느 정도 ‘국제기구’로서의 위상을 갖췄 다는 평을 들어왔다.


친미파 UN총장 당선시킨 미국

하지만 이 또한 완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이런 유엔의 ‘탈 미국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유엔분담금 체납’으로 맞섰다. 96년 유엔의 예산적자 23억달러 중 절반 이상이 미국 분담금 체납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어 유엔에 대한 분담금을 담보로 갈리 사 무총장의 연임에 반대하고 친미파로 알려진 현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당 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갈리 전 사무총장은 이임식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충성심은 국제사회를 향한 것이어야 하며, 결코 특정국가를 향해서는 안 됩니다”며 새 집행부에 경고를 남겼다.

한 국가 안에서도 계층간의 정치적 위상과 힘이 다르듯 국제사회에서도 부국의 영향력 행사는 막기 힘들다. 그러나 부국의 전횡을 막기 위한 나 머지 국가의 노력은 전횡의 크기에 비례해 커갈 것이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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