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쿠바/미국법이 세계법인가

“쿠바의 인권향상이란 명목으로 국내법으로 국제무역을 규제하려는 미국 의 태도는 정당한가.”

이는 지난 96년 7월 제정된 헬름스-버튼법을 둘러싼 미국과 세계 각국간 의 갈등을 요약한 것이다. 미국의 두 의원, 헬름스와 버튼의 제의로 제정 된 이 법은 제3조에 “쿠바정부에 의해 재산이 몰수된 미국인들은 쿠바에 투자한 외국인을 상대로 미국 법정에 제소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았다. 미국은 또 이와 함께 자국이 ‘테러국’으로 지목한 이란과의 무역을 다 마토법이라는 또다른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이 법들이 쿠바와 이란 정부에 압력이 돼 인권향상에 기여할 것이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법들은 미국이 자국 중심주의를 국제무역에서 도 강요하는 대표적 사례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성립돼 있는 상황에서 국내법으로 외국기업을 처벌 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캐나다다. 지난해 헬름스-버튼법을 무시하고 쿠바와의 무역을 계속해온 캐나다는 올 초 들어서는 한술 더 떴다. 로이드 액스워 디 캐나다 외무장관이 지난 1월21·22일 이틀간 쿠바 수도 아바나를 방문 해 로베르토 로바이나 쿠바 외무장관과 상호협력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두 나라는 14개항의 협정을 통해 △문화·경제 교류 활성화 △쿠바의 인 권개선을 위한 독립 인권위 설치 △마약거래 및 테러행위방지 협조에 합 의했다. 당시 액시워디 장관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을 만 나 “캐나다는 미국의 대 쿠바경제봉쇄조치에 관계없이 독자적인 외교정 책을 수행할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귀국 다음날인 23 일 미국언론인들과 만나 ‘개방을 통한 민주화 유도’라는 캐나다의 쿠바 정책이 ‘봉쇄를 통한 인권향상’이라는 미국의 제재보다 쿠바개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미국의 쿠바정책이 더 적절하다”고 강조하면서 캐나 다의 쿠바정책에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주장이 ‘미국만 의 생각’임은 곧 드러났다. ‘미국의 텃밭’으로 인식돼온 중남미의 정 치지도자들은 지난 4월29일 “이 법이 쿠바의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 비생 산적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프랑스도 지난 4월24일 쿠바와 무역협정 을 맺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함으로써 미국의 쿠바 견제에 쐐기를 박았다. 이런 세계 각국의 움직임에 미국 정부는 지난 1월과 7월 헬름스-버튼법에 대한 6개월 시행유보조처를 내려 약간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 시행유보 이유를 “유럽연합 등이 쿠바의 민주화에 좀더 노력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을 들었다. 세계의 비판에도 헬름스-버튼법은 쿠바 민주화에 나름대로 일정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어쩌면 미국은 ‘ 세계 최강대국의 무오류성’이라는 신화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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