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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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국산 쇠고기 O-157 검출과 관련해 한국에 온 미국 검역관들. 미국은 한국 검역기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미국산 쇠고기 O-157 검출과 관련해 한국에 온 미국 검역관들. 미국은 한국 검역기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한국은 미국의 봉이다.”
한-미간의 불평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재도 정치·경제·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한-미는 정상적인 수평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곳곳에서 미국인에 비해 지나치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주권국가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불량품 투성이, 미국 농산물
최근 미국이 한국 자동차시장에 대해 슈퍼 301조를 발동한 것은 미국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만만한 상대’로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은 한국과의 자동차협상이 잘 안 되자 바로 100%의 보복관세 를 한국 상품에 물리겠다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승용차 수입관세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행 8%인 우리나라의 승용차 수입관세를 미국 수준(2.5% )으로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행 8% 관세는 유 럽연합(EU)의 10% 관세보다 낮은 것으로 외국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그 런데도 미국은 지난 94년 부활시킨 슈퍼 301조를 처음으로 우리나라 자동 차시장에 대해 발동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보복관세의 시범케이스로 삼은 것이다. 유럽연합에는 약하고 한국에는 고자세인 미국의 이중성을 보여준 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미국 무역수지개선의 효자노릇을 해왔다는 점에서도 미국의 무역보복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미 국은 올해들어 자국의 10대 교역국 가운데 우리나라와 영국에 대해서만 흑자를 내고 있을 정도로 한국은 미국의 알짜배기 시장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오만한 자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최 근 미국 네브라스카산 수입 쇠고기에서 병원균 대장균 O-157이 검출됐다 는 우리쪽 발표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기까 지 했다. 미국의 재조사 요구는 ‘식품주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한국 검 역당국에 대한 모독행위였다. 그동안 수입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축수산 물 가운데 미국산이 가장 많았다는 것은 우리나라 조사를 불신하는 미국 쪽의 재조사 요구가 터무니 없는 억지라는 것을 오히려 반증한다. 보건복 지부가 지난 6월 말까지 식용으로 수입된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중 각종 세균에 감염되거나 썩어 수입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은 9백13만8천달러어 치이며, 이중 42.8%가 미국산으로 가장 많았다. 미국산은 위생후진국인 중국의 15.2%보다 3배나 불량품이 많았던 것이다.
미 방산업체, 한국 때문에 산다
미국은 그동안 우리나라 민간시민단체들이 펼치는 과소비억제운동과 소비 절약운동에 대해서까지 시비를 걸고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는 '봉'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민간시민단체의 자발적인 운동을 “수입품목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주장 아래 이를 무역장벽으로 규정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일반상품뿐 아니라 무기구매를 둘러싸고도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고자 세를 보여왔다. 한국은 지난 93년∼96년 4년 동안 미국에서 모두 24억2천 5백22만달러의 무기를 수입한 데 비해 수출은 고작 1천3백50만달러에 그 쳐 무려 24억1천1백72만달러의 대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90년부 터 96년까지 우리나라의 해외무기 구매액의 약 84%가 미국에 쏠릴 정도로 한국은 무기구매에 관한 한 미국에 철저히 예속돼 왔다. 우리나라가 미 방산업체의 상당부분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은 미 무기수출의 주요 고객임에도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고객 대접을 받아오지 못했다. ‘고객이 왕’이라는 상거래의 일반관행이 한- 미간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의 무 기를 구매하도록 우리나라에 대해 압력을 행사해왔다. 올해들어 패트리어 트 미사일 구매 강요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한 윌리 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현재 오산 등 주요 주한 미군기지에 배치된 패트 리어트 미사일 50여기를 우리나라가 구매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미 국은 이미 방공미사일체계에서 레이션사의 패트리어트를 퇴역시키고 차세 대 요격미사일로 로럴사가 개발한 ‘ERINT’(Extended Range Interceptor )를 선정하고 있어 패트리어트 구매 강요는 구식무기의 처분장으로 우리 나라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비춰졌다. 미국은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함께 북한의 노동 1,2호나 스커드미사일과 같은 지대지 미사일 을 중간에서 요격하는 전역미사일 방어체제인 항공방어시스템의 구매도 요구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는 경우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무기를 제3국으 로 수출하는 데도 미국은 시어머니 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 다. 미국의 기술이전으로 한국이 생산한 무기체계를 제3국으로 수출할 경 우에는 미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한-미 양해각서에 따라 거의 모 든 국산무기의 수출에 대해 미국의 사전승인을 받게 돼 있다. 지난 92∼9 6년 5년 동안 미국이 한국산 무기체계(방산물자 포함)의 제3국 수출을 허 용한 것은 금액기준으로 0.39%에 그치고 있다. 미국은 92∼96년 한국이 수출동의 요청한 1백23건 가운데 15건을 허용했으나 금액기준으로는 모두 4억5천8백18만달러어치 중 불과 1백82만달러어치만을 인정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경우에도 미국은 우리나라로부터 주둔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 받으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누리지 못하는 온갖 특혜를 다 받고 있다. 우 리나라가 올해 부담한 주한미군 주둔비는 전체 주둔비용의 10%인 3억6천 만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내년에는 부담비가 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 다. 여기에 주한 미군은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면제받는 특혜를 받고 있다 . 우리나라 국군의 경우에는 작전용차량에 대해서만 통행료가 면제되는 데 반해 주한미군 차량은 작전차량뿐 아니라 주한미군 소속 업무용차량도 모두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받고 있다. 이렇게 해서 주한미군 차량이 지 난 86년부터 95년 말까지 10년 동안 면제받은 통행료는 모두 74억원어치 이다. 자국군보다 외국군이 특혜를 받는 주객전도의 양상이 벌어지고 있 다.
용산 기지 이전 사실상 백지화
(사진/미8군 용산기지 앞엔 미군범죄 피해상황을 고발하는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걸려 있다.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탓에 범인처벌도 쉽지가 않다. )
주한미군의 주둔지는 또 환경오염의 대명사가 되고 있으나 미군쪽은 어떠 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지난 96년 9월 환경부가 국정감사 자료로 제 출한 자료에 따르면 철수한 미군 기름저장시설 주변의 토양에서 보통 땅 보다 최고 24배나 많은 납이 나오는 등 중금속으로 크게 더럽혀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현행 한-미 행정협정(SOFA)은 미군시설을 반환할 때 원 상회복과 보상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아무런 보상없이 오염된 땅을 그대로 한국에 넘겨주면 된다.
우리나라 도심 한복판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의 이전문제도 미국의 무리한 요구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미 양국의 합의에 따라 평택과 오산지역으 로 옮기기로 했던 1백만평의 서울 용산 주한미군 기지 이전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지난 96년 3월 합의했던 부산 부산진구 범전동의 미군 ‘하 얄리야 부대’ 이전사업도 미국쪽의 고자세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국 방부와 부산시는 부대 이전비용으로 4천억원 가량을 제시하고 있으나 미 군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8천억∼1조1천억원을 요구하고 있을 뿐 아니 라 한국 건설업체를 믿지 못하겠다며 시공업자를 자신들이 지명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미국은 아쉬울 것이 없다는 배짱이다.
미국이 현재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땅도 엄청나다. 미군뿐 아니 라 미 대사관 등 미국이 한-미 행정협정(SOFA)에 따라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국내 땅은 여의도의 52배에 이르는 4천1백여만평이나 된다. 이중 미 정부가 불법으로 무상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땅만해도 서울 광화문 거리 의 주한 미 대사관 터 등 6건 8만4천여평에 이르고 있다. 연간 임대료를 따지면 2백억원 이상을 미국은 한푼 안 내고 무상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뿐 아니라 30여년간 대표적인 한-미 불평등조약으로 꼽혀온 한-미 행정 협정 개정협상도 미국쪽의 무성의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비용마저 한-미-일의 분담원칙을 무시하면서 한-일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을 제일 먼저 제의 해 놓고 막상 돈들어가는 일이 벌어지자 뒤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부당한 요구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무기구매시장의 다변화를 통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한국 이 미국의 ‘봉’이 아니라 당당한 ‘파트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 라는 것이다.
김성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