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추적

비상! 중국산 벼멸구의 대공습

(사진/대구 동성로 한 가게 앞에 널브러진 벼멸구. 이상번식으로 보기에는 수가 너무 많아 중국에서 자란 성충이 기류를 타고 넘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가을걷이 무렵 벼이삭의 밑둥을 잘라먹으며 농민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게 했던 중국산 해충 벼멸구. 그들이 이제 도심 대공습을 감행하고 있 다. 지난 9월 중순께부터 서울의 신촌, 휘경동 등 도심 일부 지역에서 모 습을 드러낸 벼멸구가 현재 안양, 인천, 대구 등 대도시에서 떼를 지어 출몰하면서 시민생활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2∼3mm 크기의 작 은 매미 모양을 한 보잘것 없는 벌레가 도시민의 삶에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살충제 방충망으로도 막지 못한다

인천시 남구 광교동과 송도동. 이 지역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지난 9월20 일부터 날이 따뜻한 저녁이면 마음놓고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게 됐다. 붉은 색깔을 한 벼멸구 떼가 집안으로 마구 들이닥치기 시작한 때문이다. 광교동의 김기영(31)씨는 “틈새만 보여도 날아드는 통에 골치가 아프다 ”며 “이게 왠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그나마 날이 싸늘해지면서 진정 기미가 보여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서울의 신촌이나 동대문구 휘경동 등 번화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네온사 인의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점멸하는 이 지역 상가들이 갑자기 나타난 날 파리떼에 고통받고 있다. 신촌 일대의 음식점 주인들은 “음식물에 날파 리(대다수 시민들은 벼멸구를 이렇게 부른다)가 자꾸 떨어져 손님들의 항 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장사를 못해먹겠다”고 울상이다.

그래도 이들 지역은 대구광역시에 견주면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대구 시 전역은 이미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서구 평리 4동 서구청 맞은 편에 위치한 신평리 시장은 멸구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살충제를 뿌리고 방 충망도 설치해보지만 수천마리씩 떼지어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을 당 해낼 재간이 없다. 튀김 등 음식물이나 생선은 아예 비닐로 덮여 있다. 그리고 오후 8시, 평소에는 장사가 한창일 시간이지만 일찌감치 문을 닫 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상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옷가게에선 점원 들 몇몇이 진열장 불빛을 들이받고 바닥에 새까맣게 떨어진 멸구를 쓰레 받기에 담아 치워보지만 이마저도 지친 듯 곧 포기해버린다. “지금은 그 래도 조금 낳은 기라예. 그저께는 정말 굉장했어예. 이틀 동안은 장사도 못했는 걸예.” 분식점을 하는 김달수(53)씨는 “아침에 셔터문을 올릴 때 시커멓게 떨어지는 벌레를 보면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며 이렇게 전 했다.

웨딩숍들의 울상은 더욱 깊다. 희디 흰 웨딩드레스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벌레들이 장사를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뭐가 안 되려고 망조가 든 기라 예. 무슨 조화속인지…” 백도연(38)씨는 아예 싸움을 포기한 듯이 이렇 게 말한다. 드레스 진열장 밑으로 널브러진 벌레들의 시커먼 주검이 백씨 와 멸구떼의 사투를 전해준다.

중구 동성로 속칭 로데오거리와 삼덕동 등 대구시 중심지역은 더욱 가관 이다. 매장의 불빛을 따라 모여든 벌레들이 창문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흉 물스런 풍경을 연출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당구대에 새까맣 게 내려앉아 당구를 칠 수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 시민들이 멸구로 고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26일께부터다. 9월 중순부터 한두마리씩 눈에 띄기 시작한 멸구가 이때부터 기온이 높고 눅 눅한 날 밤이면 어김없이 떼지어 도심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상번식 아닌 성충이 기류에 실려온 것

(사진/한반도의 벼멸구 피해는 봄마다 중국에서 새로운 멸구들이 날아들기 때문에 아무리 방역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

“처음에는 그저 날파리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대낮에도 몸에 달라붙 을 정도로 많아요.” 대구환경운동연합 공정옥 간사는 “중국에서 날아온 벼멸구다, 매미충이다 말들이 많은데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걱정” 이라며 불안해 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원인분석은 물론 사태조차 제

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시 보건과는 주민들이 멸구로 고통받기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 그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처음듣 는 이야기란 반응을 보인다. 처음에 단순한 날파리 이상번식 정도로 여겼 던 대구시. 방제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자 지난 10월2일부터 하루 두 차례씩 시 전역에 대한 소독을 실시하는 등 뒤늦게 안간힘을 썼다. 하지 만 속수무책이기는 마찬가지.

대구시 보건과의 한 관계자는 “소독약으로는 잘 죽지않는 데다 낮에는 신천이나 금호강 등에 숨어있다 밤에만 몰려오기 때문에 박멸에 애를 먹 고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농촌의 들녘도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때아닌 벼멸구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벼멸구의 도심공습을 둘러싸고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들은 봄에 편서풍을 타고 중국에서 날아든 멸구가 여름 동안 이상번식한 결과로 추정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윤병두 농촌지도관은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올 7∼8월 기온이 예년보다 높아 멸구가 2∼ 3세대를 교체하는 등 이상번식했다”며 “가을걷이와 함께 서식처를 잃게 된 벌레들이 기온이 따뜻한 도심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 다.

하지만 단순한 이상번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구지역의 멸구 공습을 조사하고 있는 경북대학교 생물학과 박희천(50) 교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번진 규모나 대구도심에 몰려드는 개체수를 볼 때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번식한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중국 남부 지역에서 기류를 타고 날아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정도 숫자 로 번식했다면 대구지역의 농사는 완전히 망쳤을 것”이라는 박 교수는 “농사에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봐 중국남부 아열대 지역에서 짝짓기를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오른 멸구들이 돌풍에 휘말려 북동기류(제트기류)에 편입된 뒤 한국으로 날아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들은 기류의 방향에 따라 이동을 계속하다 기온이 따뜻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려앉는 다는 것이다. 대구시가 벼멸구로 곤욕을 치르는 것도 분지지형으로 주변 지역보다 기온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대구지역에 집중적으로 멸구가 상륙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농촌진흥청 관계자도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에 국부적으로 멸구가 이상번식했기 때문에 대구까지 어떻게 진출했 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대륙 오염물 확산의 예고판일 뿐

해마다 봄철이면 중국에서 기류를 타고 날아들어 나무줄기와 벼에서 기생 하는 벼멸구는 농작물에는 심각한 피해를 주지만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벼멸구의 도심공습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밤기온이 18℃가 되면 활동이 둔화되고 10 ℃ 이하로 내려가면 죽는 생태적 특성으로 볼 때 날씨가 추워지면서 곧 막을 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간이 해결책인 셈이다.

그러나 박희천 교수는 당장 벼멸구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앞으로 계속 늘 중국 오염물질의 확산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호소하 고 있다. “가을철 멸구의 도심 공습은 중국 대륙의 오염이 확산되면서 앞으로 닥칠 모기나 파리 등 공해성 병해충의 공습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정확한 원인 규명과 방지책 마련을 위한 연구를 당장 진행해야 한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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