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때려죽여도 수사 안한다?

(사진/수사불가론으로 버티고 있는 김태정 검찰총장. 그러나 김 대통령의 결심이 서면 그동안의 인간관계에 비춰 볼 때 김 총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DJ 비자금을 처음으로 폭로한 10월7일 오후. 검찰의 첫반응은 출신지역별로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그래도 집권여당의 사무총장인데 근거없는 내용을 발표했겠나. 사실이 라면 수사가 불가피할 것 같다.”(PK출신 간부) “여론이 신한국당 뜻대 로 안 돌아갈 것이다. 오히려 여당을 욕하지. 이런 분위기에서 수사는 힘 들다.”(호남출신 간부) 그러나 다음날은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수사 불가.”


“잘못하면 민란 일어날 분위기”

물론 검찰의 공식적인 수사불가 이유는 “수사단서가 없어서”이다. 지난 10일 신한국당이 재벌그룹의 이름까지 들이댔는데도 “줬다는 쪽이나 받 았다는 쪽이나 모두 부인하고 있으므로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깔아 뭉갰다. 하지만 김현철씨 사건 때 범죄혐의가 없어 “한보철강 냉연설비 도입과정에서 현철씨가 2천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한 야당의원의 주장(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을 영장에 써넣어가면서까지 수사에 나섰던 검찰이고 보면 궁색한 변명임에 틀림없다. 또 “시간이 없 다”는 이유도 신한국당이 친절하게 계좌추적까지 마쳐놓아 확인만 거치 면 될 정도라 설득력이 떨어진다.

진짜 이유는 이런 수사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다. 수사착수가 안고 있는 폭 발성 때문이다. 검찰조직 자체가 치명상을 입을 위험성이 농후하기 때문 에 출신지역이나 정파를 초월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좀 장황하긴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옮겨보자. “일단 수사에 들어가면 검 찰은 반드시 결론을 내려야 한다. ‘모’아니면 ‘도’인 것이다. 권투경 기 심판처럼 양쪽 손을 다 들어주며 중간을 택할 묘안이 없다. 우리가 어 떻게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있겠나.”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 하다. 뚜렷한 범죄혐의도 없는데 검찰권을 섣불리 행사할 경우 정치권의 극한 공방에 휩싸여 검찰의 중립성만 훼손된다.” “김현철 구속으로 검 찰 위신이 겨우 섰는데 덥석 이번 사건을 물었다가는 정말 검찰이 망한다 .” “광주지검에 전화를 걸어봤는데 수사에 착수하면 정말 민란이라도 일어날 분위기다. 설사 검찰수사덕에 신한국당이 이긴다 해도 그 오욕은 최소한 30년 안에 치유되기 힘들다.” “정치인들이 토크쇼를 벌이고 있 는데 검찰이 뛰어들어 칼춤을 출 수야 없지 않느냐.”

이렇듯 ‘수사불가론’이 검찰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이지만 끝까지 버텨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단지 결정권자 인 김태정 검찰총장의 뚝심에 의지할 뿐이다. 김종구 법무부 장관은 이미 “검찰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며 발을 빼놓은 상태이다. 김 총장은 현 재까지는 14일 대검 국감 때의 공세에 대비해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 고 방어논리를 가다듬는 등 ‘맷집 키우기’에 전력하고 있다. 검찰 한 관계자는 “김 총장이 ‘때려 죽여도 않는다’고 하더라”고 전하기도 했 다.


김 총장 약점 모은다는 소문도

김 총장의 이런 자세 때문인지 검찰 외부에서 김 총장을 씹는 소리가 검 찰 내부로까지 들려온다. “부산출신이라 앉혀놓았더니 호남후배들만 챙 기고 호남향우회에만 나간다. 사람이 변했다”는 변절론이 들린다. 또 홍 준표·이사철 의원 등 ‘저격수’들이 김 총장으로부터 “수사에 착수하 겠다”는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과거 경력상의 약점들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이 무엇보다도 걱정하는 것은 김 대통령과 김 총장의 끈끈한 인연이다. 대통령의 결심이 서면 그동안의 인간관계에 비추어 봤 을 때 총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 는 이번 신한국당 발표자료의 출처가 청와대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선 검사들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현재의 정치상황 에서 대통령이 직접 검찰총장에게 노골적으로 수사착수를 명령할 입장이 못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한 검찰간부가 “수사에 착수할 확률이 30 %”라고 표현한 것이 의미있게 읽히는 대목이다.

김의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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