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청와대가 흘렸다”

(사진/신한국당 폭로자료의 출처에 대한 구구한 의혹은 이제 청와대로 모아지고 있다.)

DJ비자금설과 관련한 신한국당 폭로자료의 출처에 대한 구구한 의혹은 이 제 하나의 지점, 즉 청와대로 모아지고 있다.

폭로전을 주도하고 있는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은 “국가의 장래를 걱 정하는 수많은 국민의 제보에 힘입어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폭로 내용의 구체성과 자료의 성격 등에 비추어 볼 때 단순제보에 의존해 작성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실제 강 총장과 발표문안 정리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한 관계자는 출처에 대해 '모 기관'이라고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귀띔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지금까지 신한국당 주변에서는 문제의 자료가 신한국당으로 전달되기 전 이미 외부에서 기초자료의 수집과 사실확인, 정리 등이 상당기간 극비리 에 진행됐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전-노 비자금 사건 후속수사

국민회의는 처음부터 국가기관의 개입의혹을 제기했다. 국민회의는 강 총 장이 6일 밤 안기부 관계자와 만나 공개할 내용을 최종 손질했다고 주장 했다. 국민회의는 또 은행감독원 검사6국 직원들이 사정기관에 파견돼 계 좌추적을 도왔다는 제보가 있다고 폭로했다.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계좌 를 관리한 것으로 지목된 이형택 동화은행 영업1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국세청이 몇년 전부터 자신의 계좌를 추적해 왔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 폭로자료와 관련해 개입의혹을 받고 있는 곳은 안기부, 검찰, 국세청, 금 융감독기관 등 이른바 사정기능이 있는 국가기관을 총망라하고 있는 셈이 다. 이들 기관을 동원할 수 있는 곳은 물론 청와대 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신한국당 자료의 원천은 95년 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수사기록과 같은 검찰자료 등을 토대로 사정기관들이 몇년에 걸쳐 추적, 정리해 온 ‘DJ파일’일 가 능성이 가장 높다는 지적이다. 전-노 비자금 사건의 수사기록이 활용됐음 은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지난 9일 신 한국당이 이른바 김대중 총재의 ‘20억+알파’설과 관련해 증거로 제시한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의 민영애, 동화은행 본점 영업부의 소심회 등 3개 계좌가 이미 사건 당시 발견됐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신한국당이 지난 10일 발표한 김 총재의 기업 비자금 수수내역도 당시 재벌총수들에 게 이미 확보해 놓은 진술이 토대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 은 “당시 수사과정에서 DJ와 JP에게 준 돈도 함께 조사했다”고 전한다.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은 신한국당 발표자료가 당시 검찰 수사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후속작업을 벌인 결과라는 검찰 내부의 시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제의 계좌 3개가 노태우 비자금사건 때 드러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수사는 노씨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은 부분에 집 중됐고 그 돈의 사용처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즉 노씨의 세 비자금계좌에서 나온 돈이 김대중 총재쪽으로 들어갔다며 신한국당이 제 시한 증거는 누군가 다른 쪽에서 작업을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재벌 총수들을 상대로 DJ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조사한 부분도 진술만 받아놓았 을 뿐 그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각종 수사기록을 토대로 추가추적과 자료정리를 통해 DJ파일을 완성한 주인공으로 검찰에서 파견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한 비서관이 지 목되고 있어 주목된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로 93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줄곧 청와대에 몸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관계 자는 “지난 96년 4·11 총선 때 홍준표 신한국당 의원이 자신을 ‘정치 보복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는 박철언 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청와대 민정 수석실로부터 관련자료를 얻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말이 사실이 라면 청와대는 김대중 총재, 박철언 의원 등 야권인사에 대한 파일작성을 주도해 온 셈이다.


이형택씨 계좌 96년 두차례 조사

김대중 총재에 대한 사정기관의 추적작업이 오래 전부터 집요하게 이뤄졌 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형택 동화은행 영업1본부장이 지점장으로 근무했던 동화은행 서역삼지점의 한 간부는 “ 올 상반기와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유관기관에서 이씨가 관리했던 계좌를 조사해간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또 한국은행 관계자는 “은감원 안에 서 1∼2달 전부터 검사6국이 야당의 비자금 조사에 동원됐으며 수백억원 규모의 DJ 비자금 계좌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증권감 독원이 지난해 12월 대한투자신탁에게 옛 평화민주당 계좌에 대한 자료제 출을 요구한 사실도 기관의 개입 의혹을 증폭시켜 주고 있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