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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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이 김대중 총재의 재벌 돈 수수 사실을 폭로하면서 김 총재의 후 보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회의 등 야권은 “여권도 나을 게 없다”는 반응이다. 국민회의 몇몇 당직자들은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 느냐”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사실 신한국당은 기업의 뒷돈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기 업으로부터 막대한 뒷돈을 챙겨온 게 바로 여당이기 때문이다. 95년 10월 19일 박계동 전 의원(민주당)의 폭로로 시작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 금 사건은 여권으로 흘러드는 뒷돈의 규모와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노씨는 6공 집권 5년 동안 대우그룹으로부터 2백50억원을 받는 등 30대 기업으로부터 50억∼3백억원씩 모두 2천3백58억원을 끌어들였다. 또 각종 이권을 매개로 모두 5천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전 두환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일해재단 등 각종 모금이나 국책사업, 대형공사 등을 수주하는 대가로 기업으로부터 한번에 수십억원씩 재임기 간 동안 모두 1조원 이상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96년 4월 비자금 공판에 서 전씨가 스스로 밝힌 것만도 5천6백여억원에 이른다. 전씨는 “87년 대 선 때 1천9백74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지원하는 등 재임기간 동안 5천6백74 억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도 의혹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김 대통령은 취임과 함 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92 년 대선 당시 김 대통령이 천문학적 액수의 자금을 썼을 것이라고 단정하 는 분위기다. 국민회의는 그 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제전문가들도 92년 대선 당시 3백25만명의 동원인원, 민주산악회 나라 사랑운동실천본부 등 사조직 운영비, 당사무처 직원과 지구당에 대한 실 탄지급 등을 근거로 “1조∼1조2천억원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 다.
물론 김 대통령은 대선자금 사용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창구도 다양하고 영수증도 없어 그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 만 그 실체가 일부 드러나고 있다. 먼저 민자당이 92년 7월 작성한 홍보 기획단의 문서에서 홍보비만도 선관위 신고액 2백84억보다 많은 5백35억8 백만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한보로부터 92년 대선 당시 김 후보 진영에 6백억원이 지원됐다는 게 기업과 정치권의 정설로 굳어져 있 다. 노씨의 한 측근인 안병호 전 수방사령관은 96년 초 한 시사월간지와 의 인터뷰에서 “1천4백억원이 노 대통령으로부터 YS에게 넘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회의는 92년 당시 민자당 경리부 대리 김재덕씨가 “ 공조직 대선자금만 3천1백27억원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 고 김현철씨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현철씨가 92년 나사본 운영자금으로 쓰다 남은 돈 1백20억원을 박태중 (주)심우 대표와 김기섭 전 안기부운영 차장을 통해 관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이 돈 대부분이 노씨가 기업 으로부터 끌어들인 돈이거나 ‘금융계의 황제’ 이원조 전 의원과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을 통해 기업으로부터 동원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정 설로 굳어 있다.
그리고 김 총재에 대한 맹공을 주도하고 있는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도 많 은 돈을 어디선가 조달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판단이다. 이 총 재가 경선과정에서 광화문에 1백평짜리 선거캠프를 차리고 ‘새로운 미래 를 준비하는 모임’ ‘한국사회연구원’ 등 5개 사조직을 꾸려 왔고 대의 원들의 지지를 얻는 데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는 추론에 근거하고 있 다. 그러나 이 총재쪽은 경선과정에서 “사무실 임대료 등으로 모두 2억5 천만원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후원회비와 고문변호사료 등으 로 모두 충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드물다.
박찬종 고문이 경선과정인 지난 7월13일 “이회창 후보진영이 2곳 이상의 지구당 위원장에게 5천만원씩 활동비명목으로 전달했다”며 돈살포를 주 장했고 다른 주자들도 “한번에 1백만∼2백만원씩 드는 식사모임을 계속 해온 이 총재쪽이 그정도 돈만 썼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맞섰다. 또 야 권은 현행 지정기탁금제가 기업의 뒷돈을 여당이 합법적으로 독식하도록 하는 자금줄 구실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여당은 94년 1백70억원(79건), 95년 2백31억원(1백6건), 96년 3백 40억원(1백13건) 등 모두 7백41억원의 기업돈을 독식했다. 올해도 9월 현 재 3백61억원이 모두 여당으로 기탁돼 있다.
기업과의 뒷돈 거래. 정치자금, 비자금, 지정기탁금으로 그 이름을 바꾸 고 있지만 여야 정치권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족쇄이다. 과거를 묻지 말라. 그것은 지난 5월11일 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호소한 말이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23일 제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