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만리재에서

중세 유럽과 현대 한국의 차이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또다시 마녀사냥에 대한 우려를 토해내고 있다. 과 연 그들은 중세 마녀사냥의 무차별 성과 무오류성 그리고 음모와 협잡을 알고나 하는 소리일까.

마녀사냥은 로바 법왕 이노첸티우스 8세의 교서로 정당화되며 이를 계기 로 공인된 마녀식별법이라는 것이 나온다. 첫 번째 방법이 `바늘겨레법' 이다. 마녀는 자신의 부하인 사자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하며 따라서 마녀 에겐 피를 수혈해준 흔적으로 몸 어딘가에 검버섯이나 상처 같은 것이 남 아 있으며, 또 그곳은 감각이 마비돼 있다는 단정에 근거해 개발해낸 것 이다. 때문에 사냥꾼들은 잡힌 여자들을 발가벗기고 때론 구석구속 체모 까지 모두 깎아 이 표시를 찾거나 바늘로 온몸을 쑤셔대며 무감각한 곳을 찾는다. 고통에 못이겨 `실토'하면 그것으로 끝이나.

이것만으로 식별되지 않으면 두 번째 방법인 `마녀 목욕탕'이란 기구를 이용한다. 마녀는 물에 드지 않는다는 단정에 근거한 것이다. 사냥꾼은 실토하지 않은 혐의자들의 손발을 묶어 이 욕조에 던진다. 그리고는 그가 뜨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손발이 묶인 사람은 당연히 가라앉는다. 따라서 이 방법은 혐의자를 모두 마녀로 확인해준다. 이 얼마나 손쉽고 완벽한가 .

그러면 당시 마녀로 찍힌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불행하게도 대개 몸 매가 아름답거나 하여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처녀, 아니면 두뇌가 명석 하거나뛰어난 재주를 가진 여인이었다. 고발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사냥 꾼이 고발을 종용하기도 했다.

요즘 마녀사냥꾼으로 지목되고 있는 안기부, 막무가내로 고발해대는 신한 국당으로선 더없이 불쾌하다. 싸그리 불에 처넣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세와 다르다. 또 중세의 마녀와 달리 지금 은 극소수지만 간첩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를 거부하기는 낯 간지럽다.

색출법만 놓고보면 닮은 점이 더 많으니 말이다. 오익제 월북사건 수사를 놓고 보자. 안기부는 오씨의 월북이 확인된 직후 오씨를 즉각 간첩으로 규정했다. 그렇게 쉽게 간첩으로 확인된 직후 오씨를 즉각 간첩으로 규정 했다. 그렇게 쉽게 간첩으로 확인된 오씨가 대통령 자문기구의 구성원으 로 십수년간 활동하는 동안 사냥꾼들은 무엇을 했을까. 물론 영장에는 혐 의만 나열했을 뿐이라고 대꾸할 수 있다. 그러나 안기부가 간첩이라고 하 면 간첩이 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둘째 안기부의 간첩 판단은 항변을 허 락지 않는다. 국민회의마저 한마디 이의를 달지 못한다. 중세 때 마녀를 변호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마녀의 증거가 됐다. 마찬가지로 간첩 판단은 오로지 안기부에 맡겨진다. 설사 누명이 벗겨져도 사회적 낙인은 계속 유 효하다. 셋째, 지금까지 수사란 것이 `오익제=간첩' 규정 위에서 더 많은 `간첩'을 색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오씨와 접촉했던 사람들이(하다 못해 전화통화라도 한 사람까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혹은 그와 돈을 주고받았는지, 따위를 따진다. 일부라도 확인되면 그는 `마녀의 피 를 받은 자'가 된다.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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