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진단

통한의 외침 “우리는 오류를 범했다”

(사진/한총련 대표로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길에 올랐던 양현주씨는 한총련의 변화를 촉구하며 축전참가를 거부했다.)

한총련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이제는 한총련 주류 내부에서부터 본격적으 로 불거져나오고 있다. 통일운동 방식을 비롯해 한총련 출범식 사태 이후 벌어진 한총련의 변화 요구에 대한 지도부의 대응방식까지를 아우르는, 비판의 목소리는 광범위하면서도 심각하다.


민중의 희망으로 거듭날 변화를 찾자

한총련 지도부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쿠바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한 한총련 대표단의 자기비판은 그래서 더욱 절실해보인다. 축전 대표인 양 현주(23·홍익대 건축과)씨와 조응주(23·서강대 신방과)씨는 한총련의 축전 참가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비판하며 한총련의 진정한 변화만이 한총련이 민중의 희망으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한총련이 파견한 대표들이 지도부의 결정을 따르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총련 주 류가 운동방식을 놓고 이렇게 심한 이견대립을 보인 것도 전에 없던 일이 다.

한총련이 추구하는 3자연대 통일운동방식을 실현시키기 위한 해외의 조직 적 구심인 베를린의 범청학련 공동사무국 대표 류세홍, 도종화씨와 축전 대표 양현주씨가 국내로 보내온 통신글은 이들이 현재의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 드러난다.

이들은 한총련 지도부가 무엇보다 먼저 현재의 한총련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줄타기를 하고 있 습니다. 조직 중앙의 주관적 판단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하고 있습니다 . 조직 내부의 다양한 의견은 건강한 조직의 중요한 요소임에도 그 목소 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견해를 달리하는 다양한 목 소리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조직으로 다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은 한총련의 정세판단과 투쟁방침이 주관주의적 오류로 인해 잘못됐 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한총련이 내세운 상반기 노선은 정세판단의 원 칙과 주체정세, 객관정세에서 모두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전제 한 뒤 “현 정세를 전민항쟁으로 규정한 한총련의 노선은 주체정세만을 중심에 놓고 바라본 나머지 객관정세를 과도하게 끼워맞춘 주관주의적 오 류에 빠진 것”이라고 밝혔다. 비과학적인 투쟁노선의 설정은 필연적으로 모험적인 투쟁으로 전개된다.

이들은 또 한총련의 통일운동 방식도 비판한다. 한총련의 통일투쟁이 “ 고민의 부재로 원칙을 강조한 교조의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통일 운동 과정에서 대중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은 민족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 며 높아진 반면, 통일운동의 구호는 여전히 예전 그대다. 좀더 발전적이 고 수준높은 통일운동을 위해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구호는 아직도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한총련이 북한동 포돕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한총 련은 정권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교조적인 발상으로 대중들을 묶어세우는 데 소극적이었다. 대중적 공감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 통일운동의 모든 분야에 주인된 자세로 나서는 것은 언제나 청년학생들의 몫이었음에도 불 구하고 고민이 부족했기에, 경직된 사고로 임했기에 대중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그리고 8월이 되어 범민족대회와 범청학련 사수를 소리높여 외치 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다양한 이해와 요구 담아낼 조직을

간부들의 자세와 의사결정구조의 문제도 지적됐다. “자주적 대중조직이 제힘을 발휘하려면 조직에서 조직성원들의 이해와 요구가 다양하게 분출 되는 가운데 민주적 합의절차를 거쳐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 가슴 아프게도 현재의 한총련은 중앙의 구성원과 조직구조가 다양한 이 해와 요구의 분출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의 민주적 절차를 소홀히 하는 조직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중조직의 투쟁과정을 사상정립의 과 정이라고 규정한 데서부터 시작해 대의원대회의 고질적인 의사결정구조에 가서는 그 오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스스로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나가 는 간부들의 모습을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 현재 우리의 조직 한총련이 처한 현실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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