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록은 저항인가 자유인가

(사진/신촌일대의 라이브클럽은 뜨거운 젊음의 열기를 내뿜는다. `드럭'에서 공연하는 록밴드 노 브레인.)

시끄러웠다. 90년대 언더그라운드 록 진원지인 홍대앞, 그중에서도 수장 격인 라이브클럽 ‘드럭’ 어귀에서는 4층짜리 빌딩을 쥐고 흔드는 폭발 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목요일 오후 8시. 공연은 이미 한창 뜨거웠다. 지하입구로 들어가는 계단 옆 벽에는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온갖 낙서들 이 휘갈겨져 있다. 계단 중간에 앉아 있는, <트레인스포팅>의 이원 맥그 리거를 닮은 빡빡머리 친구(?)에게 5천원을 건네고, 포카리스웨트 캔 하 나 받아들고 들어섰다. 온갖 페인트로 얼룩진 철문을 여니 록이 폭풍처럼 '확' 밀려온다. 마구 고함을 질러대는 밴드 주위로 50여명의 청춘들이 바 글바글하다. 30여평 정도의 내부에는 몇개 있지도 않은 각양각색의 의자 들이 마구 널브러져 있고, 나뭇바닥은 찌그러진 캔 나부랭이가 박혀 있는 채로 주저앉은 곳도 있고, 벽·기둥 주변으론 매직, 스프레이로 갈긴 온 갖 낙서가 빽빽하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앰프소리, 무대 바로 앞에선 ‘저러다 모가지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자아낼 만큼 음악에 맞춰 고개를 마구 흔드는 헤드뱅잉에 몰입한 이들.


록밴드 우후죽순, 대학가 점령 태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30 분 가량 엉거주춤하게 서서 음악에 약간씩 몸을 흔들기도 해보니, 처음의 낯선 기운이 가시고 서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제멋대로 나뒹구는 의자 에 푹 눌러앉아 천장을 바라보니, 망망대해에 보트 하나 띄우고 드러누운 듯하다. ‘말 달리는’ 음악은 여전히 온몸을 진동시키고 있었고.

언제나 그러했지만, 이렇듯 록은 젊음의 언어다. 라이브클럽은 신촌, 대 학로, 강남 등 서울에만 30군데가 넘고, 이 클럽에서 활동하는 언더그라 운드밴드는 50여개가 넘는다(일부에선 1백여개라고 주장한다). 고교생 스 쿨밴드, 대학생 칼리지밴드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있다. 드럭을 찾은 그날 도 공연이 끝난 뒤 3팀이나 오디션을 받겠다고 찾아왔다. 70년대 포크, 8 0년대 민중가요의 자리를 이제 록이 꿰찼다. 대학가 축제 한쪽에는 으레 록 페스티벌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일부 ‘청년학도’들은 열광한다. 81 년 서울대 축제 때 ‘옥슨80’이 공연을 하러 왔다 서울대생 5백여명이 ‘제국주의의 쓰레기’라며 몰려가 무대를 때려부수는 바람에 도망갔던 일에 견줘보면 상전벽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서울대에는 현재 7∼8 개 정도의 록밴드가 생겨났고, 지난 5월에는 20여개 대학밴드가 함께 한 록 페스티벌이 벌어졌고, 자하연 부근에선 게릴라 공연도 심심찮게 일어 난다. 오버그라운드에선 신중현 헌정음반이 나오고, 산울림이 컴백하고, 시나위, 넥스트, 강산에, 김종서, 리아, 김경호까지 제한적이긴 하지만 록이 댄스의 파고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이 록 열풍을 주도하는 이는 20 대 초반, 그리고 캠퍼스다.

과거에도 록은 있어왔지만 그 정도나 형태에서 분명 요즘은 뭔가 다르다. 이처럼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록 열풍에 대해 나름의 분석이 없을 리 없다. 민주화 열기가 사라지고 시대상황이 달라진 90년대, 단일했던 대학 문화가 다양성을 띠게 되면서, 강력한 사운드와 고동치는 비트 등 전세계 젊은이들의 공통언어인 록은 자연히 새것을 찾는 젊음들을 끌어당겼다. 또 90년대 초 기존 주류음악과 기존질서에 반기를 내걸고 얼터너티브를 주창한 너바나(Nirvana)의 영향은 국내에도 그대로 전파돼 얼터너티브는 70년대 펑크와 비슷하게 하나의 음악장르로서뿐 아니라 시대정신으로 떠 올라 록은 저항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띠게 됐다. 그리고 또하나, 힙합과 랩으로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서태지가 3집부터 자신의 출신인 록을 들고 나오면서, 우리 음악계에 록의 지평을 한껏 넓혀놓았다. 그의 공백을 H.O .T나 젝스키스가 메우기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서태지 출현 이후 록의 지형 넓어졌다

이런 토대가 마련된 상황에서 94년 이후 신촌에 라이브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여기에 라이브밴드들이 둥지를 틀면서 록 바람은 지금에 이르 렀다. 이즈음 록의 저항성에 뒤늦게 주목한 총학생회쪽에서 운동수단으로 록을 차용하기 시작했고, 민중가요패들도 대중의 기호인 록을 적극 수용 했다. 천지인, 메이데이, 이스크라, 조국과 청춘 등 민중 록밴드들이 생 겨나고 꽃다지, 안치환 등도 록을 적극 받아들였다.

70∼80년대에도 록마니아, 록밴드는 있었다. 당시 수많은 고등학생들은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퀸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나 뮤지션을 우상처럼 떠받들었고, 시험공부라도 하듯 록을 순차적으로 배워나갔다. 그러나 80 년대 시대상황에서 록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는 너무 어려웠다. 당시 록 마니아들은 당시 널리 퍼졌던 헤비메탈 중심의 정통 하드록 또는 프로그 레시브 록을 주로 들었다. 현란한 기타속주, 그 속에서도 한음 한음 정확 하게 짚어나가는 고도의 테크닉, 완벽한 보컬 등 이때의 록은 예술(Art) 이었다. 90년대에 록을 접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70∼80년대 록마니아들처 럼 해박한 록지식을 갖고 있진 않다. 그러나 지적이고 냉정하며, 한편으 론 자신의 평가보단 공인된 평가에 자신의 안목을 맞추려고 노력했던 선 배들에 비해 이들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을 안고 있다.

그리고 예전과 달라진 또 하나는 90년대 록 주요 소비층으로 여성이 떠오 른 점이다. 록은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남성들의 음악이었다. 80년대 메 탈음악의 금속성과 딱딱한 사운드는 여성들의 부드러운 감수성과는 상반 되는 측면이 많았다. 하지만 여성들도 바뀌고, 록도 바뀌면서 그 둘은 지 금 서로 만나고 있다. 문화흐름에 더욱 민감한 여성들의 발길로 최근 라 이브클럽에서 여성들은 이미 과반수를 넘어섰고, 여성 로커 지망생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성들을 록으로 끌어들인 주요한 하나는 펑크다. 지금도 메탈음악 추종자들이 적진 않으나, 현재 국내 록 흐름은 펑크가 장악했다. 펑크는 일단 쉽다. 폼잡는 메탈처럼 정교하지 않아도 된다. 얼 핏 들으면 그냥 마구 내지르는 것 같지만, 뜸 들이지 않고 곧바로 느낌이 팍 온다. 가사, 곡 모두 그냥 제멋대로 내지르는 삐삐밴드나 황신혜밴드 를 생각해보면 된다. 특히 ‘펑크’는 음악장르로서뿐 아니라 삶으로서의 ‘펑크정신’도 신세대의 매력을 끈다. “Do It Yourself”(그래, 나 못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 마음대로 한다). 예전과 달리 록 마니아들이 듣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직접 기타를 들고 과감히 나서게 된 이유도 이러한 펑크정신에 연유한 바 크다.


저항이라기보단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하지만 이런 펑크 만연에 대해 이른바 정통 록을 추구하는 이들은 “펑크 가 제2의 댄스가 돼가고 있는 느낌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펑크만 추구한 다면 한국의 록은 펑크밖에 안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에 대 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94년 7월 홍대앞에 최초로 라이브클럽인 드럭을 세웠고, 지난해에는 인디 레이블을 발매하는 등 홍대 언더그라운드 록신(Scene)을 창시한 이석문(3 7) 사장은 “1년 전부터 펑크가 메탈을 압도했다. 록이 비주류인 상황에 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걸 해야 되는 것 아니냐. 또 사운드와 음질에 신경쓰는 메탈, 하드록보단 펑크가 인디 레이블에도 적합해 펑크는 전략 적으로도 많은 이점을 안고 있다. 록이 자유롭게 재생산될 수 있는 구조 가 되면 록의 다양화는 절로 이뤄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록은 저항’이라는 담론의 근거도 의미없는 가사의 반복, 욕설이 끼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성질서, 기성세대에 대한 극도의 반발이 주를 이루는 펑크록의 반사회적(?)인 가사와 마구 두드려 깨부수는 듯한 사운 드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저항담론은 평론가들과 이에 부합하는 허 영기가 만든 허상이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록은 자유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홍대앞 클럽에서 만난 록마니아, 록밴드들은 그런 말에 시큰둥하 다. 드럭에서 활동하는 ‘노 브레인’(No Brain)의 보컬 이성우(21)씨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뿐, 저항이니 어떠니 하는 것은 별 관심 없다”고 말한다. 이날 쉴새없이 헤드뱅잉에 열중했던 백은경(19·호서대 1)씨는 “누구에게 저항하기 위해 록을 듣는 게 아니다. 그냥 록이 좋을 뿐이다”고 말했다. 팝칼럼니스트 하세민(34)씨는 “록은 저항이라기보다 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시각을 달리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펑크는 저 항음악이 아니라, 기존음악과 달리 개성있게 하다보니 펑크정신이라는 게 생겨났다. 록음악도 하나의 오락이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소수의 전유물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록이 과연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비록 언더그라운드 록밴드가 우 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지만, 대중음악 시장의 바로미터인 음반판매량에 서 록은 아직 맥도 못춘다.

삼성뮤직의 조재성 대리는 “록은 뜨거운 감자다. 버릴 수는 없지만, 아 직까지는 결코 장사가 되지 않는 장르다. 록마니아라곤 하지만 외국의 이 름난 밴드의 음반만 살 뿐 국내 밴드의 음반은 한장도 사지 않는 친구들 이 많다”고 투덜댔다. 음반판매량에서 타워레코드쪽의 집계에 따르면 50 위권 내에 록음반은 7개에 불과하다. 실제로 록이 젊은이들 사이에 별 저 항감없이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록마니아는 소수이고, 아직도 약간은 별종인 경우가 많다.

앞으로 록은 젊음의 언어로 더욱 자리잡아 가겠지만 록은 록일 뿐이다. 그리고 록을 통해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그 순간 즐거울 수 있고, 그 순간 젊음일 수 있다면 록은 제 할일을 다 한 것이다.

“모두 내게 말들하지/ 왜 그렇게 사냐고 손가락질을 하곤 하지/ 내가 머 리 기르는 것도 바지 찢어 입는 것도/ 넌 못마땅해 하지/ 뒤에서 수근거 리곤 하지/ 넌 그걸 모르는 거야/ 내겐 자유가 있어/ 난 이해할 수 있지 만 넌 눈을 못떠/ …/ 날 이제 내버려둬 날 이제 상관하지마/ 난 이제 내 삶을 내 맘대로 살 꺼야”(청년단체 중).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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