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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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과 관련된 악마주의에 대한 논란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탄생 부터 기성세대가 아닌 젊은층을 대상으로 어필한 록음악은 그 사회의 경 제권을 쥐고 있는 기득권층이 아닌, 아무런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음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카운터 컬처(count culture )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기독교적 정서가 사회 전체에 크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서구 사회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기성세대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음악이란 곧 악마의 음악이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 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로큰롤이라는 음악은 악마의 음악으로 낙인찍혀 있었고, 록이 끊임없이 가지를 치며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나아갈 때마다 록의 새로운 조류는 곧 악마의 음악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서구문명을 바라볼 때, 이런 논리는 이미 설득력을 잃고 있다. 물론 지금도 록 뮤지 션 중 일부는 끊임없이 악마논쟁에 휘말리고 있을 터이지만, 지금 서구사 회에서 록과 악마주의의 관계를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은 우리가 길에서 피켓을 들고 세상에 종말이 왔다고 열심히 외치는 광신도 를 바라보는 눈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록의 팬이거나 아니건 간에 록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 미지는 사운드면에서나 가사면에서 보통의 음악에 비해 강한 어조를 내포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운드라는 것은 처음에 아무리 공격적이고 파 격적인 형태를 띠었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흘러서 반복되다 보면 곧 신선 함을 잃고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로큰롤이 헤비 메탈이 되고, 얼마 전 에 국내에서 문제가 되었던 데스메탈에 이르기까지 록은 계속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아 왔으며, 이는 단지 록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누군가 현 재에 와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악마의 음악이라고 한다면, 곧 비웃음거리 가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음악 가사라는 것을 평가할 때 대부분의 사람 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노동가, 민중가요와 같이 선동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노래나 찬송가 등의 종교음악을 제외하면, 음악의 가사가 나타내는 것은 작사자의 상상력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수 박진영 이 과연 그의 노래가사에서처럼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자와 선정적 행위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만 해보아도 이 답은 너무나 자명해진다. 공포영화 의 감독, 엽기적 소설을 쓰는 작가, 괴기스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악마 주의자로 몰아버릴 수 없듯이 가사를 통해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표 현을 하는 음악인이 있다고 해서 그를 악마찬양자로 몰아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얼마 전 국내에 몰아닥친 악마주의 음악 논쟁에서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데스메탈과 같은 과격한 록음악을 음란물과 거 의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데 있다. 사실은 일반인의 눈이 미치지 않는 사 각지대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경제적으로는 매우 궁핍하게 마 련이며, 이는 심지어 마니아들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진 경우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다. 음악을 위해 경제적인 욕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을 돈을 위 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루는 격이다. 이는 시작에서부터 어긋난 모순 아닌가? 지금까지 언급한 수많은 허점들 을 진지하게 숙지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 ‘악마주의 음악’에 대한 논란 은 자칫하면 20세기말을 장식하는 ‘무의미한 마녀사냥’으로 남을 여지 가 있다.
이 원/ 핫뮤직 수석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