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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문학은 ‘견원지간’?

1959년 영국의 스노(C. P. Snow)경(卿)은 <두 문화>란 책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두 문화 사이 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무척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스노경의 지적 이후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과 같은 과학학(Scienc e Studies)은 자연과학자들에겐 인문학적 사고를 제공하고, 인문학자에겐 과학의 본질을 설명함으로써 두 문화를 이어주는 교량 구실을 하는 분야 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중시됐다.

그렇지만 과학학이 바라보는 과학과 자연과학자가 바라보는 과학의 모습 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로 1962년 발간된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사 연구에 기반해서 과학이 누적적으로 발전하 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과학이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합 리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1980년대 들어 일군의 과학사회학자들은 쿤의 주장을 극단적인 형태로 발 전시켜서, 자연과학 이론이나 법칙이 과학자들 사이의 합의과 타협에 의 해 만들어진 것임을 주장했다. 즉, 마치 정치적 합의나 법률처럼 과학 이 론이나 법칙도 과학자라는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이 합리적, 객관적,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던 자연과학자들은 이러 한 주장을 몹시 못마땅해 했고, 이들의 불만은 작년 ‘소컬사건’(Sokal Affair)이라는 사태로 충격적으로 표면화됐다. 앨런 소컬(Alan Sokal)은 양자중력(Quantum Gravity)과 같은 첨단 과학이론이 해방적인 포스트모던 과학이 될 수 있다는 요지의 긴 논문을 한 인문학 잡지에 투고했던 뉴욕 대학의 수리물리학 교수였다. 그는 과학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구성되었 음을 주장한 몇 안 되는 과학자 중 한명이었다.

논문이 출판되는 날 소컬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논문이 아 무 의미없는 ‘날조’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는 특히 과 학문화학을 하는 일군의 인문학자가 얼마나 과학에 대해 무지한가를 테스 트하기 위해 엉터리 논문을 그들의 잡지에 투고했고, 이것이 출판됐다는 사실은 자신의 가정이 옳았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컬의 날조는 <뉴욕타임스> 등에 대서특필되었고, 소컬은 < 뉴욕타임스> 1면에 사진이 실린 세번째 수학자라는 영예(?)를 안을 정도 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소컬의 날조극을 극찬했다. 와인버그를 비판했던 노턴 와이즈(Norton Wis e)라는 프린스턴대학의 과학사 교수는 올봄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과 학학 석좌교수로 추천되었다가 그곳 과학자들의 반대로 갑자기 임용이 좌 절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소컬사건이나 와이즈사건이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 의 거리를 점점 더 적대적이고 좁혀질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제 막 과학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는 한 국에선 과학학이 자연과학에 대해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과학기술 시대를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시민을 교육시 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것이 무척 중 요하다.

홍성욱/ 토론토대학 교수·과학기술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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