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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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변호사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이들은 색깔을 분명히 하라.” 이렇게 말하 면 아마도 신한국당에서 가장 반색을 하며 나올 듯싶다. 그들은 연일 논 평을 통해 야당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싶어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 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병정들 같다. 트럼프 병정들은 하얀 장미에 빨간 칠을 해서 여왕의 눈을 속이다가 결국 발각되어 목을 베이게 된다.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는 ‘칠장이 히틀러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칠장이 히틀러는 색깔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배운 바 없어 그에게 정작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모든 것을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 칠장이들은 본래 그 대상이 가지고 있던 색깔을 실제보다 더 과장하거나 아예 다른 색으로 감추어 버린다. 그래서 브레히트는 ‘오 칠장이 히틀러여 왜 자네 는 벽돌장이가 되지 못했나’ 하고 한탄했다. 색깔을 분명히 하라는 데 칠장이들이 나서서 ‘그래 맞아’ 하고 좋아한다면 이는 참으로 넌센스다 .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훔칠 권리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다른 채권보다도 우선 변제해 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조항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채권자 들은 평등하게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지 노동자의 퇴직금채권만 특 별보호하는 것은 평등권과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생존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어떤 권리보다도 선재한다. 그러기에 가톨릭에서 성서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하는 바티칸 공의회문헌 은 “빈곤의 극을 겪고 있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타인의 재화에서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쉽게 말해서 장 발장은 굶어 죽지 않기 위 해 성당의 촛대를 훔칠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하물며 노동자 자신의 전 인격을 투자해 얻은 정당한 대가이자 그와 가족들의 생존수단인 임금은 당연히 다른 채권에 우선해야 한다.
대법원판례에 따르면 퇴직금은 매달 받아야 할 임금의 일부를 모아두었다 퇴사시 한꺼번에 지급하는 후불임금이다. 즉 퇴직금은 입사 후 다달이 이 미 받았어야 할 임금의 일부로, 만약 그때 기업 형편상 임금을 못 받게 되었다면 다른 일자리로 옮겨갔을 것이므로 과거에 벌써 받았어야 할 임 금을 다른 채권보다 우선하여 변제하는 것은 형평의 법논리상 당연하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가 이를 부인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겉으로는 법논리 를 들먹이고 있지만 80년대 유행했던 사회과학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당파 적, 계급적, 정치적 결정이다.
통상 기업도산 후 임금채권과 경쟁하는 것은 은행자본이다. 그런데 은행 들은 저당권설정 등을 통해 자신의 자본회수를 확실히 해두고 있으므로 결국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우선변제받지 못하면 그 이익은 고스란히 은행 자본에 돌아간다. 이번 결정으로 기업가들은 그만큼 담보력이 늘어나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고 은행 역시 빌려준 채권을 안정적으로 추심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과거 자신들이 일한 대가로 벌써 받았어 야 할 임금의 일부를 퇴직 후를 대비해 미루어뒀다는 이유로 떼이고 말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요컨대 노동자의 생존권과 자본의 이익 중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 이번 판결의 본래 색깔이다.
다시 대통령선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각당 후보들은 토론회에 나와 한 결같이 대기업도 좋고 노동자에게도 좋은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대답했다.
비가 오면 우산장수 아들이 좋고 짚신장수 아들은 우는 법이다. 우산장수 , 짚신장수에게 모두 좋은 날씨가 어디 있겠는가. 노동자에게도 자본가에 게도 좋게 하겠다는 식의 정책은, 아무런 정책이 없다는 말이거나 아니면 무조건 표를 얻어 당선될 목적 아래 자신의 색깔을 숨기는 것 둘 중 하나 이다.
이데올로기의 선언과 그것에 대한 경직된 고수로 말미암아 동유럽사회주 의가 몰락해간 지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이지만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 니 노동과 자본의 이해충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기에 서유럽에서도 신자유주의 보수당들이 퇴조하고 사회당계열들이 일제히 다시 집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충돌 두루뭉실 넘기지 말라
우리 정치권은 북한과 관련이 있네 없네 하는, 칠장이 히틀러식의 유치한 색깔론 공방에 수십년 동안 머물러 있다. 그러면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해충돌은 적당히 넘기려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노동법 날치기 통과, 퇴직금 우선변제를 부인하는 헌법재판 소의 결정 등 어느 한쪽에 대한 분명한 선택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참된 의미의 색깔론이 전개되어야 할 때다. 여·야 후보들을 불러놓 고 이렇게 물어보자. “당신은 퇴직금 채권의 우선변제를 지지하느냐, 거 부하느냐” “당신은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중 누구를 돕겠느냐.”
그리고 모호한 대답에는 귀를 막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