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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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기다리는 한국영화 중 <접속>은 뛰어난 감수성과 완성도를 자랑한 다. 안정감 있는 화면구도와 절제된 연출력, 특히 섬세한 심리묘사.
라디오 PD인 동현과 CATV 홈쇼핑채널 가이드인 수현은 사랑의 아픔을 지 녔다. 동현은 자신의 옛 사랑을 잊지 못하고, 수현은 친구의 애인을 사랑 한다. 사랑으로 아파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알게 된다. 만남의 계기는 음악과 컴퓨터 통신.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한 채 컴퓨터로 대화를 나눈 다. 신세대문화를 반영하는 이 모습에서 그들은 즉흥적이 되거나 감상적 일 수 있다. 삐삐, 자동응답기, 컴퓨터 통신 등. 인간이 만든 매체에 의 해 인간은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기존의 영화들은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춰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접속>의 두 인물은 컴퓨터 접속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나눈다. 메마른 통신공간 속에서도 이해와 화합은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를 통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멜로드라마의 장점을 활용한 이 영화는 현대의 일상이다. 우리가 다시 원 시사회로 돌아갈 수 없듯 새로운 통신문명 안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진실한 감정의 교류다. 특히 적절한 내레이션의 활용과 분위기를 이 끌어내는 대화는 인물의 심리변화를 잘 보여줌으로써 감정의 교류가 얼마 나 소중한 것인지를 대변한다.
장윤현 감독은 독립영화 <파업전야>와 <인재를 위하여>를 연출했다. 80년 대 이데올로기 투쟁 역시 새로운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감독이 보여주는 90년대 중반의 모습은 ‘인간적인 의사소통’의 발견이라는 점 에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가 상업영화와의 접점을 찾아야 했던 점은 스스로 고민했던 문제겠지만, 이 영화는 충분히 자신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 같다.
영화는 90년대식 사랑을 노래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발견 하지 못하고 주인공들은 스쳐 지나간다. 실수를 저지른 수현은 동현에게 사과하면서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가 만날지 모른다’고 말한 다. 만남의 순간은, 정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설지 모르는 일이 다. 그런 점에서 한순간의 만남을 위해 이들이 벌이는 줄다리기는 상투적 인 멜로드라마의 틀을 깨고 대안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영화는 시종일관 감정의 균형을 유지한다. 육체의 접촉보다는 대화와 영혼의 접속으로 이 어지는 드라마는 간명한 형식미 속에서 발현되는 마음의 울림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