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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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흔들리는 한총련 깃발. 대중화 11년의 학생운동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벼랑끝을 향해 달리는 고장난 기관차.’
의장 권한대행 체제 출범도 못해
공안당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총련을 개인적으로 탈퇴한 대의원은 전체 대의원의 약 60%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당국의 탈퇴 강요와 부모나 애인 까지 동원한 강압이 행사됐다 하더라도 매우 높은 수치다. 전문대의 대의 원들은 100% 탈퇴했고, 4년제 대학들도 50% 이상이 탈퇴했다.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큰 대학들 가운데 일부는 개강한 뒤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탈퇴 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문대를 비롯해 학생운동층이 얇 은 곳에서는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빠지면 학생회 체계가 운영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탈퇴서를 쓰는 경우도 있다.
강압 일변도로 나서는 공안당국에 맞서는 한총련의 대응 역시 힘이 없어 보인다. 한총련 의장의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서 지 못했다. 단일 대오를 형성해 맞서도 될까말까 한데 개혁을 위한 논의 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총련이 처한 문제를 의논하는 장으로서의 대의원대회를 요구하는 이들 도 많지만, 아직 표면에 떠오르는 움직임은 없다. 게다가 올해 한총련의 통일운동은 민족민주운동 세력 대부분의 외면을 당했다. 원칙을 세우고 바른 길을 가는 것은 좋지만, 통일운동세력의 단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는 평가가 대부분이라 한총련의 소외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한총 련 주류 내부도 매끄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범식 사태 이후 한 총련 주류의 움직임도 두 갈래로 나눠져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의장과 중앙집행위원회 사이에도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지만 한총련 지도부의 대응은 변함이 없다. 한총련 중앙집행 위원회 명의로 된 8월 말과 9월 초 개강맞이 사업계획서는 이를 잘 보여 준다. 계획서는 한총련의 올해 통일운동에 대해 “한총련 씨말리기 책동 속에서도 한총련은 8차 범민족대회와 7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을 성사시 켜 백만청춘의 통일의지와 기상을 만방에 과시했다”며 “이번 행사를 성 사시킨 것은 한총련으로 일심단결하면 기필코 승리한다는 필승불패의 신 념을 백만청춘의 심장에 아로새기며 조국통일 청사에 또 하나의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개척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평가는 내부에서도 ‘주관주의적’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강위원 의장의 반성 “대중적이지 못했다”
올해 한총련은 통일운동 과정에서 쿠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조직 의 대표들이 지도부의 지침을 어기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는 지도부 로서나 대중들로서나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승리했다고만 외치는 것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정세에 대한 평가도 대중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한총련이 걸어온 상반기 애국의 길은 파란만장의 혈로를 헤치며 김영삼 정권을 파멸의 위 기로 몰아갔으며 민중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임기 전 조기 퇴진 ’구호와 ‘전민항쟁’노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그것이 다. 이에 따르면 2학기에도 상반기와 똑같은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총련의 개혁과 혁신 방법에 대한 지침은 구체적이지 않았 다.
이에 따라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 베를린 범청학 련 공동사무국은 한총련 비판 문건에서 “한총련 간부들의 사업작풍이 대 중적이지 못하다”고 전제한 뒤 “대중의 이름을 걸고 대중의 이해와 요 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 하며 끊임없이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제도권 정치세력과 차별성을 부여하 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지도부가 아래 단위 학생회의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이들은 “대중의 이해와 요 구를 총화해 나가는 데서 구체적이지 못한, 원칙에 치우치는 총화를 진행 함으로써 기층의 실정을 총화하고 이에 기반한 투쟁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되지 못했다”며 “기층의 실제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 그 기층의 힘을 북 돋워줄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모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몫은 힘 든 상황에 처해 있는 기층간부들의 몫이 되고 중앙은 지침만을 보내주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생회장이나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실질적으 로 한총련을 이끌어가는 간부들임에도, 한총련 중앙은 이들을 제대로 이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총련이 대중적이지 못했음을 반성하는 대목은 구속돼 있는 한총련 강위 원 의장의 편지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운동의 논리로 대중에게 접근 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논리, 대중의 눈빛으로 운동의 논리와 감성을 키 워나가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한총련 주류가 이 같은 변화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한총련 사수와 강화만을 반 복한다면 학생회 선거에서도 소수파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탈퇴요구 학생운동 개혁 도움 안돼
(사진/지난 6월 한총련 출범식 과정에서 발생한 이석씨 치사사건과 관련한 한총련 기자회견.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는 내부 비판이 불거지고 있다. )
비주류쪽에서도 변화를 위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전국적 대의제 기구의 일반적 특성인 기획·집행권한의 독점을 현재 중앙집행위로 집중 되는 기획·집행 권한의 분산을 통해 해결하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 총련 의장을 직선제를 통해 선출함으로써 학생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견해도 있다. 비폭력선언을 하자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 한 간부는 이를 두고 “‘단일한’ 한총련이 아니라 ‘더많은’ 한총련 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총련 조직을 시급히 복구하 고 대선국면에 통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학생회선거를 앞당겨야 한다는 ‘조기선거론’도 불거지고 있다. 이르면 10월 안에 6기 한총련 지도부가 구성될 가능성도 있다. 학생운동의 변화 요구와 함께 2학기에 구체적으로 드러날 대중사업으로는 북한동포돕기 운동이 있다. 한총련 주류는 상반기 에 정권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돕기운동에 소극적이었지만, 최근 이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편 공안당국의 강압적인 탈퇴 요구가 한총련을 변화시키리라고 보는 이 들은 거의 없다. 변화는커녕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 학생운동 변화의 기회 를 놓치게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공안당국의 탈퇴 대학 집계에도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한총련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총학생회들의 연 합조직이다. 학생들이 뽑아준 이들 대의원들이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 은 채로 탈퇴한 것이 과연 효력을 낼 수 있겠느냐 것이다.
이적성 여부에 대한 판단에도 문제가 있다. 출범식과 관련해 빚어진 두 사람의 사망사건으로 학생운동의 법적 윤리적 책임을 묻고 혁신과 자성을 촉구할 수는 있지만, 그 사건들이 곧바로 한총련에 대한 이적성 여부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년 동안 괜찮다가 갑자 기 이적단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총련이 최근 공안당국의 한총련 수사를 ‘여론몰이식 마녀사냥’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운동 관계자들은 총투표, 학생총회, 전체학생대표자대회 가운데 한 가지를 통하지 않는 한, 대의원들의 개인적인 탈퇴 선언은 사실상 전체 학생의 의견으로 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총투표를 거친 곳은 숭실대 한곳뿐이다. 또 자주적인 대중조직을 공권력으로 깨려는 것은, 헌 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낙관주의가 파멸 부를 수도
한편 2학기 때는 학생운동의 학생자치권 보장 요구와 정부·대학당국의 학생자치권에 대한 간섭을 둘러싼 공방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학생회 간부의 기준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을 마 련해 2학기부터 각 대학에서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총학생회장은 7학기 이상이면 할 수 없다. 또 학점은 C+ 이상이 되어야 하고 형사처벌 이나 유기정학 이상의 징계를 받은 학생도 간부 자격이 없다. 그러나 많 은 전문가들은 그런 조처가 자율화된 학생회를 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의 학도호국단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위기는 낙관주의로 돌파하자는 게 한총련의 일관된 주장이다. 낙관주의가 기적을 창조하는 원동력이라면,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파멸을 불러오는 지 름길이다. 이제 기관차를 정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