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김 대통령 “미워도 이회창?”

(사진/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한 이회창 대표. 지지율 반등 조짐이 보이지 않자 여권에서는 `김심 살피기'가 분주하다.)

지난 8월21일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와의 주례회동 이후 청와대는 일단 이 대표의 승리를 위해 다시 신발끈을 죄는 분위기다. 앞 날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감춘 채 ‘이 대표만이 유일한 선택’임을 강조 하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 좌고우면이란 있을 수 없다. 김 대통령도 전혀 ‘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김 대통령이 끝까지 이 대표에 대한 ‘ 순정’을 버리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이회창 지지는 한시적인 조건부”

이 대표가 계속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지는 게임’이 확실해 지는 상황에서도 김 대통령이 이 대표를 부여안고 갈지는 미지수라는 이 야기다. 이 때문에 여권 일부 인사들은 “이 대표에 대한 김 대통령의 지 지는 한시적이고 조건부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계속 바닥세를 맴돌 때 김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돌파전략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은 뒤늦게라도 구 원투수를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내부사정이나 시기적 촉박 성 등으로 볼 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듯하다. 이 대표 스스로 물러 날 리도 없는 데다, 설령 이 대표가 자진강판한다고 할지라도 그때는 이 미 신한국당은 뒤죽박죽이 된 상태다. 새로 경선을 치러 후보를 뽑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김 대통령이 후보를 추천해 전당대회에서 추인받는 방 식을 택할 경우 당내 주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도 만무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순 서울시장을 여권후보로 영입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인 발상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조 시장을 영입한다고 할 때 다른 경선주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조 시장 대안론은 전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게다가 이인제 경 기지사 등이 출사표를 던져 당이 산산조각난 뒤라면 후보교체 자체도 의 미가 없어진다.

이 대표를 교체하기 힘들다면, 선거판도를 일순간에 뒤흔들어 놓을 ‘특 단의 조처’를 강구하는 길밖에 없다. 이 대표 지지율을 올리지는 못하더 라도 야권후보, 특히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집권을 저지하는 비상수단 을 찾는 일이다. 잠재적 폭발력을 갖고 있는 황장엽 파일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정치권에 핵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 청와대쪽이 오익제씨 월북 사건과 관련한 신한국당의 대야공세에 대해 “대처방식이 미숙하기 짝이 없다. 그런 유치한 방식이 아니라 좀더 세련되게 사상검증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도, ‘사상공세’라는 효과적 선거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반대로, 김 대통령이 각 후보들과 ‘등거리 전략’을 유지해 명실상부 하게 중립을 지키는 쪽으로 급선회할 수도 있다. 이는 김 대통령이 사실 상 이 대표를 통한 정권재창출 희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 인제 경기지사 등의 독자출마로 신한국당이 분열될 경우, 김 대통령은 자 의반 타의반으로 선거에서 완전히 손을 놓아버릴 가능성이 있다.

신한국당 대선후보 결정과정을 반추해보면 김 대통령이 이런 ‘중립의 길 ’을 선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는 듯하다. 여야 모든 후 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퇴임 후 안전도 도모하고, ‘엄정중립 을 지킨 역사적 대통령’이라는 상징성도 부여받는 것이다. 오익제씨 월 북사건과 관련한 신한국당의 공세에 청와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 나, 조순 시장과의 잇따른 만남 등을 김 대통령의 등거리 전략의 전주곡 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정치개혁 앞세운 국민투표도 가능

최후의 수단으로, 내각제를 연결고리로 한 ‘DJ 포위전략’을 구사할 가 능성도 상정해볼 수 있다. 즉 정치개혁 작업이 여야간 합의 실패로 무산 되고, 여야주자들간의 극심한 네거티브 게임에 식상한 국민들간에 “이럴 바에야 차라리 대통령제를 없애자”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김 대통령은 정치개혁과 내각제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정면돌파를 시도 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청와대쪽은 김 대통령이 ‘마지막 깜짝쇼’를 연출할 가능성은 거 의 없다고 일축한다. 한 측근은 “김 대통령은 이제 그런 큰일을 벌일 만 한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 임기 말에 결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 라고 말했다. 더욱이 김 대통령은 그동안 ‘내각제 망국론’을 펼치며 임 기중에 개헌이 없음을 수차례 공언해온 바 있어 급작스러운 유턴의 정치 적 명분도 없는 상태다.

김종구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