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국방부 국민 알권리에 정조준

(사진/국방부가 군사기밀이라고 말하는 <한겨레> 8월21일자 보도. 국방부는 기사삭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출입기자의 국방부 출입을 불허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국민의 알권리’와 ‘군사기밀’이 충돌하는 사건이 다시 터졌다. 국방 부가 신문보도 내용을 문제삼아 국방부 출입기자의 출입증을 회수하고, 해당 신문사는 이를 부당한 조처라며 행정소송 제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 는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 8월22일 <한겨레> 국방부 출입 김도형(37) 기자의 ‘국방 부 출입증’을 회수하고 국방부 출입 및 취재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김 기자가 쓴 <한겨레> 8월21일치 1면 머릿기사 ‘새 중형 잠수함 도입 추진 , 수의계약방식 논란’을 문제삼은 것이다. 국방부 출입기자가 보도내용 때문에 출입증을 박탈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규 아닌 ‘개량형 사업’ 문제 지적

‘새 중형 잠수함 도입…’ 기사의 요지는 “국방부가 중형 잠수함 도입 사업을 ‘신규사업’이 아닌 ‘개량형 사업’으로 추진해 군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잠수함 1척당 2천8백억원이 들 것으로 예 상되는 이 사업을 ‘신규사업’으로 규정하면 잠수함을 생산하는 세계 각 국의 참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개량형 사업’으로 규정하면 중형 잠 수함 도입처는 독일이 된다. 개량형 사업은 지난 86년부터 수의계약으로 독일쪽에서 도입중인 기존 1천2백t급 209잠수함의 성능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기자는 “중형 잠수함은 성능이 기존 209잠수함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당연히 신규사업이 돼야 한다”는 군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 사업과 관련한 군 내부의 논란을 전했다.

국방부는 이 기사의 보도를 막으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김 기자가 ‘중형 잠수함’을 취재중인 것을 파악한 국방부는 8월20일 오전 갑자기 ‘중형 잠수함 도입’건에 대해 출입기자단에 ‘엠바고’(일정시 일까지 보도금지)를 요청했다. 이미 보름 전부터 이 문제를 취재해온 김 기자는 “이는 <한겨레>의 취재보도 자체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라 며 엠바고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또 국방부 출입기자단도 회의를 열어 엠바고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날 오후 두차례에 걸쳐 다시 보도금지를 요청했고, 21 일치 가판이 나온 뒤에는 잠수함 사업이 ‘군사기밀’이라며 기사 자체를 시내판에서는 완전히 빼줄 것을 요청했다. <한겨레>는 이를 수용하지 않 았다.

이에 따라 강준권 국방부 대변인이 21일 오후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해 김 기자에 대한 출입증 회수조처를 통보하고 출입기자 교체를 요구했다. 강 대변인은 “<한겨레>의 기사는 대외공개 때 국가안보와 국익에 심대한 손 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방부 보도규정 제31조(군 출입기자증 및 종군 기자증의 회수)에 따라 김 기자의 출입증을 회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겨레>쪽은 이에 대해 “이번 보도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의 정당한 보 도이며 따라서 출입기자 교체에 응할 수 없다”는 자세다. 또 국방부가 계속 김 기자의 출입거부를 고집할 경우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한겨레>의 이런 태도는 ‘중형 잠수함 도입’이 군사비밀에 해당하지 않 는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지난 93년 12월27일 개정된 현 군사기밀보호법 은 군사기밀을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물건”으로 “군 사기밀이라는 뜻이 고지되거나 보호에 필요한 조처가 행하여진 것과 그 내용”(제2조)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정에 따른다면 ‘중형 잠 수함 도입’건은 군사기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김 기자가 국방부 관계자를 만나 취재하는 동안 누구도 이것이 군사기밀이라고 말하 지 않았다. 또 잠수함 기종 선택을 두고 이뤄진 여러 논의들이 국방부 산 하 국방과학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지 <국방기술연구>에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한겨레>쪽은 특히 국방부에 보낸 항의공문에서 “잠수함 도입건과 같이 막대한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은 충분한 내부토의를 거쳐 합리 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직·간접으로 국민의 감시와 동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면서 보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군 내부에서조차 논란거리가 되 고 있는 점을 밝힌 것은 전체적으로 국가나 국민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 는 것이다.


보도진에 재갈 물리는 보도규정

이번 <한겨레>와 국방부간 논쟁의 쟁점 중 하나는 과연 법률도 아닌 ‘국 방부 보도규정’을 근거로 출입기자의 취재를 봉쇄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 가 하는 것이다. 지난 92년 헌법재판소는 옛 ‘군사기밀보호법’에 한정 합헌 판정을 내렸다. 옛 군사기밀보호법이 군사기밀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93년 군기법은 군사기밀의 범위를 상당히 축소했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