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격동하는 재벌/금호그룹

돌파구는 해외에 있다

(사진/1946년 택시 두대로 출발해 재계 11번째 그룹으로 성장한 금호그룹. )

올해 초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은 그룹 임원들 앞에서 주중은 물론 토요일 에도 절대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골프채를 잡 은 박 회장이 ‘핸디 10’의 수준급 실력임을 잘 아는 임원들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박 회장은 또 해외출장도 가급적 주말을 끼고 가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장 스스로 그룹이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앞장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박 회장, '나부터 골프 안치겠다' 허리띠 조여

금호는 지난해 60억원의 적자를 냈다. 금호타이어의 노사분규로 어려움을 겪은 94년을 제외하면 지금껏 그룹 전체로 적자가 난 해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4월6일 형인 박성용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그룹 3대 회 장에 취임한 박 회장으로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금호의 적자는 그룹의 간판인 아시아나항공이 5백억원이 넘는 큰폭의 적자를 낸 것이 결 정타였다. 그러나 아시아나와 함께 그룹의 ‘4두마차’를 이루고 있는 금 호건설, 금호타이어의 성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서도 순이익 규모가 40억∼60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금호타 이어는 94, 95년 연속 적자상태에서 벗어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 이다. 금호석유화학만이 2백93억원의 흑자를 내 제구실을 했다. 4두마차 가 그룹 안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중이 86%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의 성적 에 따라 그룹 전체의 표정이 밝아졌다, 흐려졌다 한다.

경기침체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올 들어서도 금호그룹의 성적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룹 전체로 상반기에만 44 억원의 적자를 냈다. 아시아나가 5백3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다 타이어 , 건설, 석유화학도 이익 규모가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으로 지난 3월 말 사돈기업인 미원으로부터 인수한 금호케미칼이 1백48억 원의 적자를 냈다. 하반기에 경영실적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 한 올해 금 호의 적자는 지난해보다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금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호남기업이다.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지 난 46년 광주에서 택시 두대로 운수업을 시작한 지 50년 만에 33개의 계 열사를 거느린 재계순위 11위(자산기준)의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임직원 수도 2만5천명에 달한다. 금호는 택시사업이 성공하자 2년 뒤인 48년 오 늘날 금호고속의 모태가 된 버스사업으로 보폭을 넓혔다. 60년에는 자체 수요가 많은 타이어산업에 진출했고 이어 그 원료가 되는 화학까지 손을 뻗쳤다. 88년에는 제2민항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켜 운수-타이어-화 학-항공-건설이라는 그룹의 뼈대를 완성했다. 계열사수가 33개에 달하지 만 대부분 이들 주력사업과 밀접히 연관을 맺고 있는 회사들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21세기에 이들 업종으로만 그룹의 앞날을 꾸려가기 어렵 다는 데 금호의 고민이 있다. 화학, 타이어 등 장치산업으로는 지속적으 로 높은 성장률을 올리는 게 힘들다. 금호는 해결책을 해외시장에서 찾고 있다. 기조실 격인 그룹 회장 부속실의 윤정진 사장은 “국내에서의 대규 모 투자가 거의 끝났기 때문에 앞으로는 우리나라보다 발전단계가 낮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집중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속버스 타이어 등 앞세워 중국 공략

금호의 해외사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중국이다. 이미 지난해와 올해에 걸 쳐 난징과 톈진 등 두곳에서 각각 연산 3백만본 규모의 타이어공장을 준 공해 가동중이고, 고속버스사업도 우한, 선천, 청두, 허페이 등 6곳에서 시작했다. 금호가 현재 중국에서 진행중인 사업은 타이어, 고속버스와 함 께 칭다오의 조명공장과 제과공장, 항공소프트웨어 개발, 곤명의 화훼단 지 등 모두 13개에 이르고 있다. 투자비로 이미 4억4천2백만달러가 들어 갔다. 금호는 또 중국 반금에틸렌, 일본 미쓰이물산과 합작으로 모두 10 억달러를 투자해 반금에틸렌의 생산규모를 16만t에서 36만t으로 확대하기 로 의향서를 맺고 9월중에 정식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반금에틸렌과의 나 프타 분해공장 합작사업이 성사되면 타이어공장과 함께 수직계열화를 이 루게 된다. 금호는 궁극적으로 중국에 ‘제2의 그룹’을 설립한다는 의욕 을 갖고 있다. 박성용 명예회장이 회장으로 있을 때부터 한중우호협회 회 장을 맡으면서 중국에 공을 들여 막강한 인맥을 구축해 놓은 것이 큰 힘 이 되고 있다.

금호의 다음 공략지역은 인도다. 인도 정부의 투자회사인 티드코와 합작 으로 인도 타밀나두주 첸나이 지역에 총투자비 1억2천만달러로 연산 3백 만본 규모의 타이어공장을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이미 지난 8월 중순 인도 정부에 투자신청서를 제출했다. 대우 자동차공장이 있는 델리에도 타이어 공장을 설립해 대우와 제휴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금호는 중남미와 아 시아나가 취항하고 있는 터키에도 타이어공장과 화학공장을 건설할 계획 이다. 이와 별도로 금호건설은 베트남 호치민시에 2억9백만달러 규모의 오피스텔빌딩과 호텔, 아파트를 건설하는 사업계약을 맺고 오는 10월중 착공에 들어간다. 윤정진 회장 부속실 사장은 “이미 성사된 프로젝트 외 에 의향서를 주고받은 사업이 12건, 내부에서 사업 타당성을 검토중인 사 업이 22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금호는 해외사업의 매출비중을 현재의 12.6%에서 2001년에는 16%, 2005년 에는 21.5%로 높인 뒤 21세기 중반에는 75%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 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놓고 있다. 사실상 그룹 매출의 4분의 3이 해 외에서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금호는 해외사업과 함께 국내 신규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박정 구 회장은 지난 1월 직접 ‘R&D 비전 추진대회’를 주재하고 정보통신과 바이오산업(생명공학)을 2000년대 그룹 주력사업으로 정하고 이들 분야의 연구개발에 8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특히 정보통신의 경우 지난해 개 인휴대통신(PCS) 사업권 획득에 실패한 데 낙담하지 않고 위성이동통신서 비스사업 등에 참여하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0년 매출 목표 75조원

금호는 활발한 해외사업과 신규사업을 통해 그룹 매출을 2005년까지 올해 (목표 6조원)의 7배인 40조원 규모로 늘려 재계순위 10위 안에 진입할 계 획이다. 또 2010년에는 매출 75조원을 달성해 5대 그룹으로 부상한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금호는 지난 79년 말과 80년대 초 1·2차 석유파동과 해외건설 부진 등이 겹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70년대 급속하게 이뤄진 그룹 확장의 부작용도 한몫했다. 금호는 81년부터 85년까지 5년간 철강 및 전기, 섬유부문 매각 , 계열사 합병 등 내실 위주의 감량경영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금호가 10여년 만에 다시 맞은 어려움을 어 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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