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삶

사물놀이 연주패 ‘사물천둥’

(사진/장애인으로 이루어진 `사물천둥'의 연주는 전문 놀이패로 손색이 없다.)

사물놀이는 흔히 하늘의 울림에 비유된다. 네 가지 악기가 저대로의 소리 로 어우러져 천둥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때 악기들은 제각각 자연의 소 리를 낸다. 꽹과리는 벼락으로 꽝꽝거리고, 징은 바람되어 징징거린다. 연신 다다닥거리는 장구는 비요, 부드럽게 둥둥거리는 북은 구름이다. 이 하늘의 소리를 장애인 네 사람이 내고 있다. 셋은 눈이 보이지 않고, 한 명은 다리가 불편하다. 그래도 소리만큼은 우렁차다. ‘사물천둥’, 그들 의 이름처럼.

‘사물천둥’은 장애인들만으로 구성된 전문 사물놀이 연주패다. 지금까 지 장애인들로 꾸려진 사물놀이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기 껏해야 취미나 공부 이상을 넘지 못했다. 이들은 거기서 한참이나 멀다. 이들에게 사물놀이는 어엿한 직업이고 생활이다. 그것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밝은 곳을 바라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더 깊은 소리를 듣고 싶은 소망”을 전하는 전문패다. 이들은 지난 6월 창단공연을 연 이래 여 느 사물놀이패 못지 않게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사물의 조화를 깨치 랴 연습하랴 그리고 무대에 서랴. 최근에는 전북 무주에서 열리는 재즈페 스티벌에 협연자로 나서 재즈와 사물의 독특한 어울림을 선사했다.


시각·양아지 장애인이 독특한 어울림 연출

아무래도 사람들의 사연이 제각각이다. 시각장애인 세 사람이 고교 시절 부터 ‘다스름’이라는 사물놀이패로 한솥밥을 먹었다는 걸 빼면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다. 다만 안마사로 안마시술소를 드나들던 기억은 시각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사는 방편으로 어쩔 수 없다. 오히려 그게 돈벌 기에는 나았단다. 한달 2백만원 수입은 족히 됐으니까. 지체장애인 한 사 람은 공연기획자로 풍물판을 떠돌다 뒤늦게 합류했다. 대학을 나와 실업 자에서 노래방 점원으로 공연기획자로 생계를 잇다 연주자로 변신한 것이 다. 사물놀이패로 바쁜 만큼 주머니는 가볍지만 마음만큼은 부자가 부럽 지 않다.

북잡이 여상범(31)씨는 두 다리가 모두 불편한 양아지 장애인이다. 백일 을 한달쯤 앞두고 소아마비에 발목을 잡혔다. 목발을 짚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내내 체육점수가 ‘양’이 었다. 선생님이 ‘가’는 주지 않았지만 항상 억울했단다. 그 쓰린 심사 를 성악으로 밴드로 풀었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만지는 게 참 편했 어요. 소리는 세상의 차가움과는 달리 따뜻하고 부드러웠죠.”

그러다 벼락처럼 사물놀이가 떨어졌다. 대학 합격통보를 받고 느긋한 마 음으로 친구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갔을 때였다. 연극 중간에 15분 가량 사 물놀이 연주가 펼쳐졌다. 발 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찌릿찌릿 소름이 돋 았다. 아! 저런 음악도 있구나. 그때 이후 사물놀이에 빠져 산다. 연세대 에서 친구들을 꼬드겨 풍물패를 만들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할 작심으 로 호남좌도농악을 이었다. 전북 남원 필봉마을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스 승은 “몸 불편한 놈이 농악 배우겠다고 찾아오기는 네가 처음”이라며 대견해했단다. 그 스승이 세상을 뜨기까지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장고잡이 전재덕(24)씨는 태어나자마자 빛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시신 경이 끊어져 현대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의사들은 그 까닭조차 모 른다. 수정체 혼탁이니 각막 이상이니 진단도 제각각이다. 그저 갓난이 때 오지게 앓은 홍역이 시력을 훔쳐간 게 아닌가 혼자 짐작할 뿐이다. 한 의사는 “12세 이전에 죽을 것”이라고 사형선고까지 내렸다. 그 기간보 다 두배를 더 살고 있으니 되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단다. “부모 님이 무척 힘들어 하셨어요. 자식노릇 제대로 못하고 부모님 마음고생 몸 고생만 시켰으니 불효만 한 셈이죠.”


사물놀이로 거듭나려 안마사도 그만둬

그는 얼마 전까지 안마사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인천 혜광 학원에서 먹고 살 요량으로 배운 게 안마였다. 안마시술소를 돌며 낯선 이들의 몸을 주물렀다. 어엿한 직업이라고 자부하기엔 스스럽다. 돈이나 많이 벌자는 생각만이 강했다. 밤새 안마를 하고, 낮에 틈틈이 사물놀이 를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장고의 천변만화하는 소리를 듣다보면 마음 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다. 장고잡이 10년 만에 깨친 경지라면 경지다 .

(사진/`사물천둥' 단원들은 사물놀이 연주자로 거듭나기 위해 안마사 등의 직업오 그만두었다. )

꽹과리잡이 이진용(26)씨와 징잡이 정철(25)씨는 전씨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시신경 위축과 녹내장으로 각각 빛을 잃은 이들은 전씨와 함께 혜광학원을 나왔다. 집에서 떨어져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 친구가 됐고 10년째 사물놀이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 역시 한때 안마사로 안마시술소를 전전했다.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침을 놓거나 안마를 하는 게 고작인 우리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안마시 술소에 죽치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달갑지 않는 나날이었지만 부모님께 월급봉투를 드리는 기쁨만은 최고였단다.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인 이들만의 몫은 아니다. 북잡이 여씨 역시 대학을 마치고서 힘든 백수생활을 했다. 다섯 군데나 원서를 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렇다고 대학원에 진학해 학자의 길을 가자니 교 수의 말이 걸렸다. “지체장애인이 교수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만 아 무래도 임용심사에서 밀려날 것이다. 그건 불문율 같은 것이다.” 그 말 에 맥이 빠져 노래방으로, 술집으로, 음식점으로 돌았다. 가게일을 보면 서 사물놀이가 그나마 힘이 됐다.

네 사람의 만남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혜광학원 학생들로 구성 된 사물놀이패 ‘다스름’이 진로를 잃고 헤맬 때였다. 사실 ‘다스름’ 은 꽤 알아주는 사물놀이패였다. 87년부터 공연을 하면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93년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에서 대상을 탔고, 95년엔 일본 에서 열린 국제장애인예술제 축하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다 북을 쥔 동료가 “안마사로 살겠다”며 패를 떠났다. 약시였던 그는 그나마 나 은 조건에서 안마사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마사 세계에서는 약 시만 돼도 한결 낫다. 호텔 사우나로 출퇴근하며 일할 수 있고 수입도 많 다. 마침 전문 연주자로 나설 작정을 한 세 사람에게 지체장애인 여씨는 안성맞춤이었다.


“장애인 딱지 떼고 최고의 무대 오른다”

‘사물천둥’의 창단공연은 〈삼도설장구가락〉과 〈삼도농악가락〉으로 우렁찼다. 몸이 불편해 판굿을 하지는 못했지만 소리는 신명과 힘으로 가 득 찼다. 여기에 대금과 아쟁을 비롯해 기타, 색소폰, 그리고 소리꾼의 소리가 어우러진 재즈풍의 사물놀이 음악 〈토끼이야기〉와 〈풀하우스〉 는 격정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조화의 세계를 선보였다. 이들의 공연을 주 선한 사물놀이꾼 김덕수씨는 “이들이 청각과 촉각으로 터득한 음감을 바 탕으로 내뿜는 소리는 전문 연주자의 공연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한다. 사실 꽹과리를 잡는 이씨의 귀는 전화기의 숫자를 누르는 소리만으로 전 화번호를 알아챌 만큼 예민하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누를 때 조금씩 소리 가 다르다는 것이다.

‘사물천둥’은 자신들의 앞에 장애인 사물놀이패라는 딱지가 붙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장애인들이 하니까 조금 못해도 눈감아주는 사람들 이 생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물놀이패로만 승부하고 싶은 것이 다. 비록 지금은 사물이 내는 오만가지 소리 가운데 반의 반도 내지 못하 지만 언젠가는 최고의 사물놀이패가 되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매 일매일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 징이 첫박을 잡으면 북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서 장구와 꽹과리가 맘껏 뛰노는 그런 무대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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