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고구려 무사의 기상 되살린다

먼 옛날 고구려에 기이한 무술이 있었다. 몸과 봉과 칼을 모두 이용한 무 술이었다. 몸과 무기는 그대로 하나가 되어, 봉과 칼은 내 몸처럼 움직였 고, 몸이 곧 칼이 됐다. 북방 민족을 떨게 했던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이 그대로 담긴 정도술(正道術)은 그러나 고구려 패망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 서 물러났다. 정도술은 이후 산속 도인들을 통해 전해져 천년의 세월 동 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정도술협회 수련부장 이재호(35)씨의 정도술 이력은 20년을 넘어선다 . 76년 중학교 3학년 때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전국무술대회를 보러 갔던 소년은 여러 무술시범 중 정도술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전율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정도술에 뛰어들었고 지금까지 결혼도, 취직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정도술에만 빠져 살아왔다. 단국대 체육교육과와 동대학원 을 졸업한 뒤 지리산에서 수련을 쌓았고, 92∼95년에는 일본유학길에 올 라 과거 일본인들이 복사해둔 정도술 비디오를 복사해 오기도 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도술은 사극이나 영화 무술지도에서 빠지지 않 았다. 드라마 <암행어사>에서 위기에 빠진 암행어사를 구해주는 사람도 정도술 계승인이었다. 그러나 워낙 어렵고 힘든 탓에 배우겠다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줄어 지난 15년간 도장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정 도술 계승자들이 “우리 대에서 끊어지게 할 순 없다”며 지난 5월 서울 보문동, 청주, 경기도 전곡, 수원 등에 잇따라 문을 열면서 다시 한번 비 상을 꿈꾸고 있다. 이씨도 보문동 체육관에서 무보수로 정도술을 가르치 고 있다. 오는 9월7일에는 용산가족공원에서 ‘정도술 시범대회’를 갖고 대중화에 더욱 힘쓸 예정이다.

1백11가지 자세술을 토대로 하는 정도술은 배움의 문턱이 높다. 그래서 이씨 등은 정도술을 이원화해 전문수련인 과정 외에 일반인 과정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부드러움과 강함이 한 자세에서 동시에 나오 고 인간의 원초적 동작을 본뜬 탓에 아이들의 두뇌발달, 성인들의 관절운 동에 정도술이 최고”라고 주장했다.

달과 별의 기운을 받아 수련했다는 그는 “하나의 자세를 잡았을 때, 과 거 우리 조상이 어디에선가 나와 똑같은 동작과 몸짓을 하고 있었을 것이 라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도술이 계속 계승, 발전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 고구려 무사의 모습이 비쳐졌다. (문의: 02-929-2332)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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