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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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촉통 싱가포르 총리가 최근 한 재판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고 총리를 비롯한 인민행동당 소속 의원 11명이 야당인 노 동자당 당수 J.B. 제야레트남이 지난 1월 총선 유세중 자신들을 ‘반기독 교 중국인 국수주의자’라고 지칭하며 범죄자로 치부했다며 그를 상대로 모두 8건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에서 비롯됐다.
유교적 민주주의 체제를 내세워온 싱가포르 집권당의 이런 명예훼손 소송 은 야당 탄압을 위한 전통적인 수단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아왔다. 집권당 은 지난 5월에도 야당 지도자인 탕량홍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무려 8백8만달러를 울궈내며 그를 파산시켰다. 싱가포르 정치관련법에 따 르면 파산자는 의원이 될 수 없다. 탕량홍은 결국 생명위협을 느낀다며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다.
그러나 야당의 발목을 잡는 명예훼손 소송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 로 흐르고 있다. 지난 8월18일부터 열린 이 소송 항소심에서 제야레트남 의원의 변호인쪽은 고 총리를 법정으로 불러내 곤욕스러운 반대심문을 벌 이며 고 총리 등 싱가포르 지도층과 정치체제를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만 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여왕의 법률 고문인 조지 카멘 피고쪽 변호사 는 지난 19일 고 총리를 법정에 출두시켜 장장 3시간 동안이나 집요한 반 대심문을 벌였다. 그의 반대심문 요지는 싱가포르 집권층이 사법절차를 야당 탄압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 해 싱가포르 민주주의의 특징과 언론 자유에 대한 질문 등 몇 마디만 파 고들면 대답이 궁색해지는 싱가포르 정치체제의 비민주성을 폭로시켜 외 국 언론에 좋은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이 재판에 국제사면위, 국제법조인 위원회 등이 참관인을 보낸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기사와 관련해 제소를 당하는 등 시달림을 받아온 외신들도 고소하다는 듯이 조롱조로 일제히 보도했다.
격분한 고 총리는 카멘이 법정에서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비난했다며 그를 명예훼손으로 추가 고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망신의 폭과 강도만 더 욱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기자/ 한겨레 국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04일 제 173호